첫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2008년 2월12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에서 배심원으로 선정된 시민들이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재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대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양승태 대법원 4년
(하) 빈곤한 사법개혁 의지
취임초부터 ‘대법원 격무’ 이유로
‘대법 아래 상고법원’ 홍보에 열중
포털광고 등 약 3억원 사용했지만
‘기득권 지키기’ 탓 공감 못얻고 표류
‘사법 권력 견제’ 평가받는
국민참여재판 안착엔 ‘소홀’
상고법원 추진 맞물려 예산 깎여
‘법관인사 이원화제’도 퇴색시켜
(하) 빈곤한 사법개혁 의지
취임초부터 ‘대법원 격무’ 이유로
‘대법 아래 상고법원’ 홍보에 열중
포털광고 등 약 3억원 사용했지만
‘기득권 지키기’ 탓 공감 못얻고 표류
‘사법 권력 견제’ 평가받는
국민참여재판 안착엔 ‘소홀’
상고법원 추진 맞물려 예산 깎여
‘법관인사 이원화제’도 퇴색시켜
취임 5년째인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못 내고 있다. 법조계에서 “상고법원 추진 말고는 한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고법원마저도 여론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국회에 막혀 사실상 좌초된 상태다. 양 대법원장은 자칫 6년 임기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대법원장으로 기록될 위기를 맞고 있다.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2005~2011년 재임)은 사법제도 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공판중심주의, 영장실질심사 강화, 국민참여재판(배심제) 도입은 사법제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반적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이 강화되고 수사기관의 강압적인 수사 관행을 견제하는 효과를 거뒀다. 배심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민주적 정통성을 보완하는 제도로 선진국들은 대부분 도입한 제도다.
■ 상고법원, 여론·국회 못 넘어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에 ‘올인’했다. 취임 때부터 상고제도 개선을 강조했고, 2014년부터 상고법원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법원 상고심이 한 해 4만건에 이르러 중요한 사건을 충분히 심리할 수 없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느라 사건 당사자들의 불만이 높아진 현실을 자신의 임기 중에 타개해야 할 주요 과제로 삼았다. 대법원은 국회와 언론에 가까운 엘리트 판사들로 법원행정처를 조직해 강력한 로비를 벌였다.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에도 나섰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낸 자료를 보면, 포털·사회관계망서비스·지하철 광고 등에 모두 2억7800만원의 비용을 썼다.
하지만 상고법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는 실패했다.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한 법조계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담보할 장치가 없고, 상고법원 판사들의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쥐게 되는 상황에서 대법원장과 대법원의 권한만 비대해진다는 이유다. 청와대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우병우 민정수석이 ‘친정’인 검찰을 의식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한 상고법원은 상당 기간 표류할 수밖에 없다. 올해 총선, 내년에 대선을 치르는 상황에서 국회가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한 이슈에 발벗고 나설 가능성은 극히 적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를 줄이려면 미국처럼 상고허가제를 실시하거나, 헌법재판소-상고법원-고등법원-지방법원으로 심급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양 대법원장이) 대법원 아래 상고법원을 두는 방안을 고집하는 것은 대법원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라 진정성이 떨어져 보인다”고 지적했다.
■ 국민참여재판은 나 몰라라?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도입 첫해 접수 건수가 233건을 기록한 뒤 2013년 764건으로 최고점을 찍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하지만 2014년 608건으로 줄더니, 지난해에는 485건으로 2년 연속 줄었다. 2013년에 견줘 36.5% 감소한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시기적으로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에 나선 때와 맞아떨어진다. 대법원은 2014년 6월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상고법원 도입을 건의한 직후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에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 도입 초기엔 피고인들이 호기심에 신청을 많이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형량이 줄어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신청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시행 전부터 예상했던 것으로, 대법원이 의지를 갖고 국민참여재판 정착에 나섰다면 극복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전직 법원행정처 고위간부 출신 법조인은 “국민참여재판은 선출되지 않는 법관의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다. 대법원이 이 제도 정착에 소홀한 것은 사법개혁에 대한 철학과 의지가 빈곤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의 교육·홍보 예산은 2012년 4억7149만원→2013년 5억4100만원→2014년 6억100만원으로 늘다가 2015년 4억4200만원으로 줄었다. 2015년은 대법원이 상고법원에 올인했던 시기다.
■ 법원 장악 위한 역주행 인사 지난달 단행된 고위법관 인사에선 ‘기수 역전’이 논란이 됐다. 전통적으로 기수 역전이 드문 법원에서 사법연수원 23기가 9명이나 승진해 선배인 22기(7명)보다 많았다. 논란의 핵심은 23기 승진자 9명 중 5명이 법원행정처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법관 인사와 사법정책을 전담하는 법원행정처는 사실상 대법원장의 ‘비서실’ 구실을 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번 인사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법원행정처에서 같이 일하면서 (대법원장과) 뜻을 같이했던 사람을 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고영한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으로 발탁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양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인 2011년 11월 당시 고영한 전주지법원장을 대법원 핵심 요직인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발탁했고, 이듬해엔 대법관으로 제청했다. 한 판사는 “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심복이다. 대법원 판결 때도 양 대법원장과 의견을 달리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2011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도입한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에도 균열을 냈다.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법 부장 승진을 앞둔 판사들을 상대로 지원을 받아 1심인 지법에서만 일할 판사와, 2심인 고법에서만 일할 판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경험이 많은 지법 판사들이 고법 부장판사로 발령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법복을 벗는 현상을 막고, 승진 경쟁을 줄여 소신 있는 판결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장기적으로 서울고법은 고법 부장을 없애고 ‘고법 판사’로만 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고법 판사로 뽑힌 23기 6명 중 2명을 고법 부장으로 임명했다. 이를 두고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의 도입 취지를 퇴색시키는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런 영향으로 고법 부장판사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23기 고법 판사를 포함한 5명이 사표를 내기도 했다. 한 고법 판사는 “고법 판사들이 그동안 대법원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전향적 판결을 많이 해왔다. 대법원장이 고법 판사 인사권을 다시 행사해 내부통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가 완성되지 않은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고법 부장판사 자리가 두 자리밖에 없는 인사 사정상 일어난 일이다. 이원화 제도를 없앤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지훈 서영지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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