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법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반대 의견을 낸 두 명의 재판관은 선진국 가운데 ‘사실’을 말한 것을 ‘형사처벌’까지 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재는 2014년 5월 개정 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에 대해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29일 밝혔다. 해당 조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현재 개정된 조항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청구인 최아무개씨는 2011년 아파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동네 주민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명예훼손을 했다는 혐의로 1, 2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고, 대법 상고심 중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이 사건과 병합된 또다른 사건의 청구인 김아무개씨는 한 회사에 5000만원을 투자하였다가 돈을 잃게 되자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투자한 회사 대표에 대한 글을 올려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심 중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도 이 헌법소원을 함께 진행하는 등 시민사회의 관심을 끈 사건이었다.
청구인들은 심판 대상 조항의 ‘비방할 목적’은 공공이익을 위해 ‘비판할 목적’과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대법원도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하여 비방할 목적과 공공의 이익에 대한 판단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헌재는 상당 수준의 인터넷 보편화와 빠르고 광범위한 전파력, 인터넷 비방글 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등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적 특수상황을 들며, “명예훼손적인 표현을 규제함으로써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 해당 조항은 명예훼손적인 표현을 규제하면서도 ‘비방할 목적’을 추가로 요구해 규제 범위를 최소한도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이수, 강일원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내 “심판대상 조항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킬 만한 사실이라면 비록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도 모두 객관적 구성요건에 해당하도록 규정해 지나치게 진실한 사실에 대한 표현행위를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직접 반박문을 게재하거나, 게시글 삭제 등을 요청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을 제기하거나, 보도에 대해선 정정·반론·추후 보도의 청구 등 형사처벌 외에 덜 제약적인 명예훼손 구제에 관한 제도들이 존재함에도 징역형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으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두 재판관은 이와 함께 미국, 독일 등도 진실한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인정하지 않고 있고, 유럽평의회도 회원국들에 명예훼손의 비형사범죄화를 촉구해왔다는 해외 입법례도 제시했지만 다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는 “진실을 말할 때는 비방인지 비판인지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면서 “청구인은 법원에서 폭행죄로 유죄 판결까지 난 사건을 인터넷에 올린 것으로 범죄사실을 밝힌 것임에도 법원이 비방 목적이라고 벌금형을 내릴 정도로 법적용의 문제가 많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수 의견은 인터넷은 전파 속도가 빨라 위험한 공간이라고 하나, 반론도 빠르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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