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던 고 김아무개씨가 “범죄 수사 명목으로 ‘패킷 감청’을 허가한 통신비밀보호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의 심판절차를 종료했다. 심판절차 종료는 심판 청구인이 숨지거나 청구를 취하했을 때 내리는 결정이다. 김씨가 헌법소원을 낸 지 5년 만에 나온 결정으로, 헌재가 시간을 끄는 동안 김씨는 지병으로 숨졌다.
헌재는 26일 김씨가 2011년 3월, 패킷 감청을 허용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7호 등에 대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심판 청구 당사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심판절차를 종료했다.
헌재는 “청구인이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과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성질상 승계되거나 상속될 수 없고, 이 사건 심판청구가 인용된다고 해서 청구인의 확정된 유죄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도 아니하므로, 이 사건 심판절차는 청구인의 사망으로 종료되었다”고 밝혔다. 청구인인 김씨는 지난해 9월 지병으로 숨졌다.
5년 가까이 시간을 끄는 동안 청구인이 숨졌다는 점에서, 헌재가 차일피일 판단을 미뤄온 데 대한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도 헌재가 결론을 미루는 이유에 대해서 야당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김씨의 변호인인 이광철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판례에는 개인의 권리구제뿐 아니라 헌법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일 경우 당사자가 사망하더라도 판단을 내리도록 돼 있는데 헌재는 또 한 번 판단을 미뤘다. 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정원은 전북지역 한 고등학교 도덕교사였던 김씨가 지난 2008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내용을 묻는 문제를 학교 시험에 출제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에 나섰다. 당시 국정원은 김씨를 수사하며 2010년 12월28일~2011년 2월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감청영장)를 받아 ‘패킷감청’을 실시했다. 패킷감청은 인터넷 회선에서 오가는 전자신호(패킷)를 가로채 감청 대상자가 이용하는 컴퓨터 화면과 똑같은 화면을 볼 수 있는 감청 방식이다. 이 때문에 컴퓨터에서 접속한 사이트, 메신저, 전자우편 등을 모두 수집할 수 있어 사생활 침해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김씨는 2011년 3월 패킷감청이 헌법에서 정한 통신·사생활의 비밀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7호 등 관련 조항들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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