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재(가운데) 발레오만도지회 비대위원과 서쌍용(왼쪽)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대법원 법정 밖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기업노조로 전환한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장과 조합원 등 4명이 발레오전장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산업별 노조 산하 지부·지회가 스스로 조직형태를 변경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다. 2016.2.19 연합뉴스
소속 회사에 상관없이 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이 단체교섭권·단체협약권이 없는 상태에서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8대5로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회사 쪽이 노조를 압박해 탈퇴를 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 산별노조 체계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경북 경주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발레오전장시스템의 금속노조 지회장 등 4명이 발레오전장노조를 상대로 낸 총회결의무효 등 소송에서 결의를 무효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0년 주식회사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의 노조인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이하 발레오만도지회)는 회사의 경비업무 외주화에 반발해 연장근로 거부 등 태업을 했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대응했다. 직장폐쇄가 길어지자 만도지회의 조합원들이 두 차례의 조합원 총회를 거쳐 조직형태를 기업별 노동조합인 발레오전장노동조합(이하 발레오노조)으로 변경하고 위원장 등 지도부도 새로 뽑았다. 조합원 601명 중 550명이 참석해 536명이 찬성(97.5%)했다. 이에 조직형태 변경 결의에 참여하지 않은 당시 만도지회의 지회장과 조합원,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등은 결의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발레오노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인 지회가 독자적으로 기업별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였다. 1, 2심은 조직형태 변경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지회장과 금속노조 쪽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산별노조의 지회는 원칙적으로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없고, 독자적인 단체교섭 능력이 있는 등 예외적으로 독립된 노조에 준하는 지위가 있는 경우에만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만도지회는 단체교섭도 금속노조에서 진행하는 등 그런 독립성이 없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총회를 열어 조직형태 변경을 결의한 것은 무효라는 판결이었다. 이는 2009년2월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평가원 지부의 산별노조 탈퇴를 허용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의 연장선상에 서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이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어 1, 2심의 결론을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로 그런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대법관 8인의 다수의견은 산별노조의 지회가 두가지 예외적인 경우에 기업별 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①독자적인 규약·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한 단체로 활동하여 비법인사단이 근로자단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경우 ②독자적으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능력까지 보유한 기업별 노조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경우. 대법원은 원심이 ②의 경우만 심리하고 ①의 경우처럼 발레오만도지회가 법인이 아닌 사단의 실질을 갖추고 있어 독립성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조직 변경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대의견을 낸 이인복·이상훈·김신·김소영·박상옥 대법관은 “노조법은 노조가 주체가 된 조직형태 변경만을 허용하므로, 산별노조의 조직형태 변경 결의 주체는 원칙적으로 산별노조뿐이다”라면서 “산별노조하부조직은 노조로서 실질이 있는 경우(②)에만 자체 결의로 산별노조를 탈퇴할 수 있으나 발레오만도지회는 노조로서 실질이 있는 단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로 이런 조직형태 변경의 길이 열려 회사 쪽이 노조 내부에 갈등을 일으켜 상대적으로 교섭권이 약한 기업별 노조로 전환을 기획하는 부당노동행위가 급증하게 될 것으로 노동계는 우려한다. 실제로 발레오만도지회의 기업별 노조 전환 과정에서 회사 쪽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을 동원해 지회를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선고 직후 원고 쪽 소송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전국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는 취재진과 만나 “대법원 다수 의견의 취지는 원심 판결이 발레오만도지회가 비법인사단으로서 실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으니 심리를 더 해보라는 취지다”라면서 “발레오만도지회는 교섭권이 없을뿐 아니라 비법인사단으로서 실체도 없다는 점을 파기환송심에서 더욱 주장해 1, 2심과 같은 결론을 받아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의 결정은 노조와 민법상 비법인사단의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을 것으로써 노조법에 조직 형태 변경 조항을 둔 취지에 완전히 반대되는 취지의 판결이다. 노조법이 아니라 민법에 의해서 판단했다고 볼 수밖에 없어 매우 부당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대법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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