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한 직원이 12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 사무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개성공단 입주기업 총회
300여명 모여 공황 상태 호소
“신뢰 떨어져 누가 거래하겠나”
허술한 긴급지원 대책에 분노
“경협보험금 지급은 보상 아냐”
지원 아닌 “합당한 보상” 목소리
300여명 모여 공황 상태 호소
“신뢰 떨어져 누가 거래하겠나”
허술한 긴급지원 대책에 분노
“경협보험금 지급은 보상 아냐”
지원 아닌 “합당한 보상” 목소리
‘다 끝났다.’ ‘희망이 없다.’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제1대연회실에서 열린 ‘개성공단 전면중단 관련 비상총회’ 현장. 완제품, 설비 대부분을 놔두고 빈손으로 북한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입주기업 124곳 관계자 300여명은 사실상 공황 상태를 호소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선언 이후 북한이 곧바로 이 지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하자, 기업들은 공단 ‘재가동’ 가능성은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국가의 제1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겁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 정부가 갑작스레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을 (하고) 일방적으로 기업에 통보하고 곧바로 시행했다는 겁니다. 정부가 합당한 보상을 해야지, ‘보험비 준다’ ‘세금 미뤄준다’고 하는 건 답이 아니죠. 우리가 잘못 없이 입은 피해에 대해, 그 결정을 한 정부에 책임지라는 것이 그게 왜 정부 비난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의 격앙된 모두발언으로 시작된 이날 비상총회는 입주기업을 위한 사전 대책 마련도 없이 일방적으로 중대 발표를 강행한 정부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의류생산업체 나인모드에서 일하는 오인열 과장은 “두고 온 원단만 10만장인데 7억~8억원어치에 달한다”고 말했다. 나인모드는 2006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아파트형 공장을 운영하다가 5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아 지난해 2월 새로 건물을 짓는 등 투자를 확대했던 터에 이런 ‘날벼락’을 맞게 돼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납기일이 임박한 완제품을 들고나오지 못한 탓에 벌써부터 거래처의 배상 청구를 걱정하는 기업도 많았다. 한 의류생산업체 이사는 “당장은 거래 중단 요청이 오진 않았지만, 대체 생산지를 찾지 못하면 조만간 납품 거래가 끊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식자재 납품기업 한빛종합물류에서 일하는 정태희씨도 “기업 4곳에 납품하고 있는데 3500만원의 미수금이 생겼다. 2013년 정부에서 저리로 받은 대출금도 다 갚지 못했는데 개성공단 쪽 공장은 정리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납품 거래가 끊기는 것만큼 우려스러운 것은 신용도 하락이다. 의류생산업체 녹색섬유의 박용국 법인장은 “개성공단의 신뢰도 자체가 떨어졌는데, 공단 가동이 재개된다고 해서 기업에 오더(주문)가 들어오겠느냐. 다 끝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이날 비상총회 직전 정부가 발표한 ‘긴급지원 대책’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피해는 2013년 가동이 5개월 동안 중단됐을 때보다 더욱 심각한데 정부의 대책이 그때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2013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및 재개 이후 업체들이 정상화되는 데까지 2년이나 걸렸다. 그래도 당시엔 시간적 여유가 있어 시설투자한 것을 제외하고 대체로 (완제품, 원자재 등을) 다 들고나올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특히 경협보험금 지급은 ‘보상’으로 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입주기업 124곳 중 경협보험에 가입한 곳은 76곳뿐이고 전체 보상금도 285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한 전자제품 제조업체 대표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험 가입 절차를 밟고 있던 터에 이번 일이 터졌다”며 “대책이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기섭 회장은 “‘지원’이 아니라 정부 행위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정부 대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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