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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태원 살인’ 19년만에…법원 “패터슨이 진범”

등록 2016-01-29 19:33수정 2016-01-29 22:06

법원 “범죄 끔찍하고 죄질 나빠”
법정형 상한인 징역 20년 선고
리도 공범 인정했지만 처벌 못해

사건초 검찰 ‘리가 범인’ 판단
패터슨, 출국금지 안돼 미국행
둘 모두 기소 안한 검찰, 비판대에
아서 패터슨(왼쪽)
아서 패터슨(왼쪽)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의 진범이 19년 만에 법정에서 가려졌다. 애초 이 사건의 목격자였다가 범인으로 신분이 뒤바뀐 아서 패터슨(37)은 2시간가량 이어진 재판에서 선고가 가까워지자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나 땀을 닦는 등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는 29일 오후 살인 혐의로 기소된 패터슨에게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살)씨를 별다른 이유 없이 흉기로 살해한 것은 그 범행수법이 너무나 끔찍하고 죄질이 나쁘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젊은 나이에 생명을 잃고, 가족들은 지금까지 정신적 충격과 고통이 남아 있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런 형량은 패터슨이 범행 당시 18살이었던 점을 고려한 것이다. 특정강력범죄처벌법은 살인과 같은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를 당시 범인이 18살 미만인 경우 사형 또는 무기형에 처해야 할 때 징역 20년을 최고형으로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의 손잡이가 짧고 예리해 짧은 시간에 흉기를 주고받기 힘들다는 점에 비춰, 피해자를 찌른 사람은 1명이라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범인과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을 당해 범인의 온몸에 피가 많이 묻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당시 패터슨은 양손을 포함해 온몸에 피가 많이 묻은 반면, 애초 범인으로 지목됐다 무죄를 선고받은 에드워드 리(37)는 상의에 스프레이로 뿌린 듯한 피가 조금 묻어 있고 패터슨과 달리 곧바로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바탕으로 “패터슨의 진술은 일관성이 없고 객관적 증거와 부합하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2011년 재수사를 하면서 새롭게 제시한 ‘혈흔 형태 분석’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1차 수사·재수사로 구성한 현장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1차 수사·재수사로 구성한 현장

또 재판부는 리 역시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해 사건의 공동정범이라고 봤다. 하지만 리는 이미 이 사건과 관련해 무죄를 확정받아, 같은 사안에 대해 두 번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일사부재리)에 따라 처벌은 면하게 됐다.

재판부는 “리가 패터슨에게 범행을 부추겼고, 피해자가 칼에 찔려 피를 흘리는데도 이를 말리지 않고, 친구들에게 범행을 과시했다”며 “리는 당시 범행을 구경하기 위해 화장실에 따라간 게 아니고, 화장실에 다른 사람이 오는지 감시하고, 피해자를 제압하기 위해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패터슨은 선고 직후 울먹이며 변호인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다가섰지만, 곧 법정 경위 4명에게 둘러싸여 법정을 빠져나갔다.

결국 법원이 두 사람을 사건의 범인으로 판단함에 따라 애초 두 사람을 공범으로 기소하지 않은 검찰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이 초기 수사를 제대로 하고,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망가는 걸 막았다면 진실이 밝혀지는 데 19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범행이 일어난 현장에 리와 패터슨 두 사람이 있었지만 부검 의사의 소견과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주요 근거로 삼아 리만 살인범으로 기소했다. 이는 초동수사를 담당한 미군범죄수사대(CID)가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한 조사 결과를 뒤집은 것이었다. 검찰의 실수는 초기수사뿐 아니라 그 뒤에도 이어졌다. 1998년 9월 리에 대해 무죄가 확정되자 조씨의 가족은 두 달 뒤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패터슨은 검찰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이듬해 8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판결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피해자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74)씨는 패터슨에게 유죄가 선고되자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이씨는 판결 뒤 기자들과 만나 “판결이 잘 나와서 마음이 편하고 시원하다. 범인을 못 잡으니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중필이한테 죄짓는 것 같았는데 독한 마음 먹고 여기까지 왔다. 이젠 중필이도 마음을 편히 가질 것 같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금은 속이 시원하지만 에드워드 리도 대법원에서 무죄를 준 적이 있으니 지켜봐야겠다. 에드워드도 똑같은 살인범이다. 일사부재리로 다시 책임을 못 묻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패터슨의 변호인인 오병주 변호사는 선고 직후 항소 입장을 밝혔다. 오 변호사는 “이 사건 범인이 패터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억울한 사람이 대신 처벌받지 않도록 항소심에서 정확히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영지 김지훈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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