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게 징역 20년형을 선고한다.”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의 진범 아서 패터슨(37)에게 유죄가 선고되자,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74)씨는 담담히 법정 바닥을 내려다봤다. 잠시 뒤 이씨는 하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12번의 공판에서 한번도 범죄를 시인하지 않은 패터슨이 법정 밖으로 걸음을 뗐다. 이씨는 그를 잠시 바라봤지만 곧 시선을 거두고 묵묵히 눈을 감았다.
이씨는 판결 뒤 취재진과 만나 “판결이 잘 나와서 마음이 편하고 시원해요. 범인을 못잡으니까 살아도 산거 같지 않고 중필이한테 죄짓는 것 같았는데 마음이 후련하고 그냥 좋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아직 1심 판결만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 특히 이번 재판에서 공범으로 인정된 에드워드 리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서 다시 처벌을 하지 못하게 된 데는 불만이 컸다. 이씨는 “지금은 속이 시원하지만, 에드워드도 대법원에서 무죄를 준 적이 있으니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판결 받아봐야 알겠다”며 “에드워드도 똑같은 살인범이다. 일사부재리로 다시 책임을 못 묻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아들을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데 19년, 정확히 6876일이 걸렸다. 1997년 4월3일, 22살 나이에 죽은 대학생 아들이 살아 있었으면 올해로 41살, 며느리도 보고 손주들이 뛰어 놀고 있을 나이다. 남편(77)이 고속버스 운전기사 일을 해 힘들게 기른 4남매 중에 유독 점잖았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경찰, 검사, 판사, 국회의원, 영화감독, 기자, 피디 등 수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1999년 검찰이 출국금지 연장을 하지 않은 틈을 타 패터슨이 미국으로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이씨와 가족들은 4년간 전국을 돌면서 ‘진범을 잡아달라’는 서명을 받아서 검찰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사위까지 직장을 그만두고 이씨와 함께했다.
19년간 범인을 잡으러 다니는 통에 많은 비용이 들었고 결국 조씨와 함께 살았던 집을 2003년께 지인에게 팔 수밖에 없는 처지가 놓였다. 하지만 지인의 선처로 이씨 부부는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집에 있는 아들의 물건은 이제 책상 하나뿐이다.
이씨는 결혼 안 하고 죽은 자식은 제사를 집에서 치르면 안 된다는 말에, 화장한 아들의 유해를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절에 안치했다. 재판이 없을 땐 매달 3일과 18일 두번씩 절을 찾았다. 하지만 협착증으로 허리 수술을 받고 무릎이 좋지 않아, 지난해엔 입춘(2월4일) 이후로 일년간 가지 못했다. 어머니 이씨는 곧 판결문을 들고 아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이씨는 “이젠 중필이도 마음을 편히 가질 것 같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씨는 “수고하셨어요”란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차에 올라 법원을 떠났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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