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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50대 ‘기러기아빠’ 숨진지 5일만에 발견

등록 2005-10-19 19:38수정 2005-10-19 22:30

6년째 홀로…10평 원룸서 마지막
가족을 미국에 보내고 혼자 살던 50대 ‘기러기 아빠’가 숨진 지 닷새 만에 발견됐다.

17일 오전 9시5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사는 ㄱ아무개(52·건축설계사)씨가 엎드린 채 숨져 있는 것을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김아무개(51)씨가 발견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ㄱ씨가 며칠째 출근을 안 하고 연락도 안 돼 집에 가 봤더니 문이 잠겨 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며 “경찰과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ㄱ씨가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ㄱ씨는 부인과 딸(21)·아들(18)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6년째 혼자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당시 ㄱ씨는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인 10평 원룸에 혼자 살고 있었다.

현장 조사를 나갔던 경찰은 “집안 곳곳에 옷가지와 책이 정돈되지 않은 채 널려 있었고, 밥상엔 반쯤 마시다 만 페트병 소주와 사망 전 ㄱ씨가 시켜 먹은 듯한 뚝배기와 냉면 그릇이 깨끗이 씻긴 채 엎어져 있었다”고 전했다.

사무실 동료 김아무개씨는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인지 저녁식사 대신 막걸리 등으로 속을 채우는 것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ㄱ씨는 강남구 청담동에서 동료 건축사 3명과 ㅇ건축사사무소를 공동 운영해 오다 최근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았고, 이후 평소 친분이 있던 ㅅ실업 회장의 도움으로 4년 전께부터 사무실 한쪽에 책상을 놓고 건축 감리 일을 해왔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김씨는 “ㄱ씨가 ‘미국 대학에 다니는 딸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무척 잘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부인 얘기는 거의 안 했다”며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부부관계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떠돌기도 했지만 워낙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깊은 속은 몰랐다”고 말했다. ㄱ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또다른 이는 “ㄱ씨가 평소 ‘돈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 유학비로 보내느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최근 들어 자녀들과 관련해 돈이 많이 들어 고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ㄱ씨의 친구 김아무개(53)씨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은 잘 안 했지만 술을 마시면 종종 외로움을 호소하곤 했다”고 전했다.

ㄱ씨의 형은 경찰에서 “동생은 평소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두 갑 이상 피웠으며, 두 달 전부터는 고혈압 약을 복용해 왔다”고 밝혔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나 유서 등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일단 ㄱ씨가 지병인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실시했다.

ㄱ씨는 19일 뒤늦게 소식을 듣고 귀국한 가족과 친지들이 오열하는 가운데 벽제 승화원에서 한 줌 재가 됐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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