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배임 혐의로 기소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데 대해,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의 판단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법원의 판결을 두고 일선 지검장이 직접 나서 공식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영렬 지검장은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 전 사장이 석유개발회사 하베스트의 정유공장 인수 당시 나랏돈 5500억원의 손실을 입혔고, 결국 1조3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손실을 낸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인정되었는데, 무리한 기소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김동아)는 지난 8일 강 전 사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강 전 사장이 배임의 동기를 가졌다거나 하베스트가 장래에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인수를 용인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지검장은 강 전 사장이 △부실한 경영평가를 만회하려는 사적 동기로 적자상태의 정유공장을 무리하게 인수했고 △자체평가와 검증 절차도 없이 단 3일만에 계약을 체결하고 이사회에 허위보고까지 했으며 △손해발생을 충분히 인식하고서도 적자 상태의 정유공장을 졸속으로 인수해 실제로 천문학적 손실을 초래했다는 점을 들어, “(1심 판결은) 어느 모로 보나 기존의 경영 판단과 관련된 판례와도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1심 판결처럼 경영판단을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며 그나마 유일하게 존재하는 검찰수사를 통한 사후통제를 질식시키는 결과가 된다”며 “검찰은 단호하게 항소하여 판결의 부당성을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영평가 점수 잘 받으려고 나랏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사후에는 경영판단이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면 회사 경영을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냐”며 “아무런 실사 없이 3일만에 묻지마식 계약을 하고 이사회에 허위 보고하여 1조원이 넘는 손해를 입혔는데, 이 이상으로 무엇이 더 있어야 배임이 되느냐”고 법원 판단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 전 사장은 2009년 캐나다 정유업체인 하베스트와 정유부문 자회사인 ‘날’(NARL)을 시장가격인 주당 7.31 캐나다 달러보다 비싼 10 캐나다달러에 사들여 석유공사에 5500여억원의 손해를 나게 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지난해 7월 구속 기소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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