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임채욱씨
[짬] ‘인터뷰 설악산’ 전시회 여는 사진작가 임채욱씨
8년간 50여차례 오르며 ‘설악 탐구’
2014년 봉정암 명함에 ‘부처바위’ 발견
지난해 8월 케이블카 ‘허가’에 충격 고교때 ‘반가사유상’ 그려 입선 인연
동양화 전공했다 아이티사업 성공도
그림+컴퓨터+한지 결합 독창적 기법
“종교·역사 등 설악의 인문가치 무한” 2015년 8월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환경단체들의 줄기찬 반대를 무시한 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신설 계획안’을 조건부로 통과시키자 그는 봉정암 부처바위를 다시 찾았다. 봉정암 앞 사리탑 뒤편으로 보이는 끝청 하단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마치 ‘반가사유상’이 케이블카를 향해 합장하는 모양새가 그려졌다. 사진가 임채욱(45)씨가 ‘설악산 지킴이’로 나서게 된 계기다. 그는 오는 6일부터 3월22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인터뷰 설악산> 전시회를 연다. 농심마니와 아라아트 주최 초대전이다. “신라 644년 지장 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셔와 창건한 봉정암 사리탑에는 주말이면 수천명의 사람들이 기도를 올립니다. 그런데 백담사에서 5~6시간 애써 올라온 사람들이 결국 케이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리는 꼴이 됩니다. 신성한 기도처였던 봉정암은 성지로서 가치를 잃게 되는 겁니다. 더 심각한 것은 설악산의 진정한 가치를 다 알기도 전에 훼손될 위험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연말 서울 을지로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관광개발과 환경문제를 넘어 설악산의 종교적·역사적 가치를 일깨워주는 인문학적 조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번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에게 설악산은 인생과 예술적 영감의 원천 같은 존재다. 미술에서 출발했으나 벤처사업가로 10여년 부침을 겪던 그를 사진 예술의 세계로 이끈 산이다. 첫 기억은 87년 고2 때 수학여행이었다. 육담폭포에서 찍은 기념사진도 있다. 95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에 입학할 때는 사진을 보고 ‘울산바위’를 그려 호평을 받기도 했다. 3남매 중 장남인 그는 집안의 뜻에 따라 한의대에 도전했으나 3수 끝에 포기하고, 소질대로 한 지방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바로 군입대를 했다. 제대한 이듬해 서울 미대에 합격했으나 부친의 갑작스런 별세로 가장이 된 그는 96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낙선하면서 크게 낙담을 했다. 대신 일찍이 컴퓨터 작업을 익힌 그는 97년 정통부 주최 ‘제1회 인터넷 대전’에 홈페이지 디자인을 출품해 덜컥 대상을 받으며 화가가 아닌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때마침 외환위기 직후 벤처 붐을 탄 그는 2001년에는 직원 70명을 거느린 ‘아이티(IT) 전문가’로 촉망받아 ‘장영실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곧 거품이 꺼지면서 2003년 빈털터리가 됐다. 2004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백남준의 마지막 퍼포먼스용 넥타이를 주문받아 제작한 것을 계기로 아트상품 개발에 나선 그는 미술시장 붐을 만나 또다시 ‘성공의 단맛’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다 2008년 속초 가는 길에 우연히 권금성에 오른 그는 산수화 같은 풍광에 매료됐다. “20년 만에 가슴이 뛰는 감흥”에 끌린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가로서 그의 이름을 먼저 알린 것은 삼척 ‘월천리 솔섬’이었다. “대학 때 그림을 그만두게 했던 바로 그 미전에서 대상을 받았던 친구의 권유로 2008년 7월 ‘아트페어’에 참가했는데 말 그대로 대박이 났어요. 그림이 주류였고 사진작가는 2~3명 끼워준 자리였는데 ‘솔섬’ 연작 5점과 설악산 울산바위의 소나무 시리즈 등 모두 17점이 다 팔렸어요.” 그림과 사진, 동양화에 아이티 비즈니스 경험을 결합시킨 ‘마인드 스펙트럼 기법’을 개발한 그는 40여차례 국내외 아트페어에 출품해 ‘가장 잘 팔리는 작가’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2011년 들어 시장 반응이 시들해지자 그는 새로운 시야를 찾아 다시 길을 나섰다. “혼자서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다가 우연히 종주를 하게 됐어요. 준비 없는 산행에 비까지 만나서 발톱이 빠지기도 했지만 ‘산’을 새롭게 발견하게 됐죠.” 제대로 등산화와 장비를 갖추고 다시 도전한 곳도 설악산 울산바위였다. 앞니 2개가 빠지는 우여곡절 끝에 건진 ‘울산바위 운해’ 사진이 홍콩에서 ‘산수화 같다’는 호평 속에 팔린 뒤 2012년, 2013년 연달아 <더 마운틴스> 전시회까지 열었다. 그렇게 지난해까지 8년에 걸쳐 50번도 넘게 설악을 파고든 그는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연구하다 설악산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다. “겸재의 스승인 삼연 김창흡(1653~1722)이 설악산 영시암에 살면서 예찬한 문헌까지 남겼는데 겸재는 왜 설악산을 그리지 않았을까 궁금했죠. 어느 날 봉정암에서 소청봉에 올라 천불동 계곡을 바라다보니 겸재의 <금강전도>가 실경으로 펼쳐져 있었어요. 금강산만이 아니라 설악을 본 느낌까지 담은 것이죠. 단원 김홍도는 관동팔경과 함께 흔들바위, 비선대, 와선대, 토왕성 폭포 등 네 점이나 남겼어요.” ‘찾아볼수록 설악의 역사문화적 가치에 놀란다’는 그는 이번 전시에 그리기만 빼고 모든 미술작업을 동원해 실제 설악을 보는 듯한 실경을 펼쳐 보일 작정이다. 2010년 국내 최대 한지업체에 직접 제안해 공동개발한 파인아트 프린트용 한지로 카메라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 산수만의 풍광을 연출한다. 더 나아가 2013년 우연히 출력 에러가 난 한지를 구겨 버렸다가 발견한 특유의 유연함을 살려 울퉁불퉁한 바위와 나무의 결까지 입체감 있게 표현해낸다. 아라아트 지하 4층부터 지상 1층까지 연면적 1천평 규모를 통으로 연결해 영상 화면까지 곁들여 봉정암 부처바위를 옮겨 놓은 듯한 실감을 펼칠 예정이다. “하루 산행은 천년 만년 천만년의 영원한 시간 체험으로 이어진다. 산의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에 든 사람은 깨달음의 길, 바로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들은 한겨울에도 구슬땀 흘리며 설악산 봉정암을 오르리라. 끝내 봉정암 자연암봉 부처바위 앞에 서리라. 거기서 영원과 무한의 시공간을 향해 두 손 모아 기원하고 있는 자연 반가사유상이 설악의 영혼인 동시에, 그 영혼에 동화하려던 자신의 영혼이었음을 깨닫고 뜨거운 눈물 훔치게 되리라.”(미술평론가 박인식씨의 서문 중에서)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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