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 교수·김규남 의원 명예회복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박노수 교수(당시 39살)와 김규남 의원(당시 43살)이 사형 집행 43년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당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김판수(73)씨도 무죄가 확정됐다.
유럽 간첩단 사건은 1960년대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직후 발생한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이다. 박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에 재직 중이었고, 김 의원은 박 교수의 도쿄대 동창으로 민주공화당 의원이었다. 이들은 당시 공산주의 진영이었던 동베를린과 자유주의 진영이었던 서베를린의 교통이 자유로워 다른 유학생들처럼 동베를린을 방문했고, 이런 분위기에서 북한도 한차례 방문했다.
하지만 당시 중앙정보부는 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해 박 교수에게 북한 공작원에게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뒤 북한 노동당에 입당, 독일 등지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김 의원과 김씨는 영국에 유학 가 박 교수와 함께 이적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했다. 박 교수와 김 의원은 1970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이들이 재심을 청구한 상태에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 돌연 사형이 집행됐다.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중앙정보부가 이들을 불법연행하고 구타 등 강압적으로 수사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발표하고 재심 등을 청구할 것을 권고했다.
2013년 서울고법 형사2부(김동오 부장판사)는 유족이 청구한 재심에서 “수사기관에 영장없이 체포돼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과 협박에 의해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재판부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 법원의 형식적인 법 적용으로 피고인과 유족에게 크나큰 고통과 슬픔을 드렸다”며 “사과와 위로의 말씀과 함께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대법원도 이 판결을 받아들였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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