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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권력비리 수사 성과와 ‘정치검찰’ 비판 동시에

등록 2015-12-29 20:05

중수부, 영광과 오욕의 32년
2013년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의 32년은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돼 있다.

중수부 기원은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청법이 제정되면서 중앙수사국 설치 규정이 만들어졌으나 예산 등의 문제로 1961년이 돼서야 중앙수사국이 정식 발족했다. 중앙수사국은 1966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상무가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 58톤을 밀수한 ‘사카린 밀수사건’을 수사해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1973년 특별수사부로 개편되고, 1981년 중앙수사부로 이름이 바뀐뒤 32년간 검찰총장의 하명 사건을 수사하는 직할 부대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수사를 도맡아 왔다.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1982년),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사건(198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1995년), 한보비리 사건(1997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2006년), 저축은행 비리 수사(2011년) 등이 중수부 손을 거쳤다. 2003년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 150여억원을 트럭 째 받은 이른바 ‘차떼기 수사’를 담당한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국민들로부터 ‘국민검사’란 칭호를 얻기도 했다.

중수부는 이러한 성과에도 표적사정·편파수사 시비와 함께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8~2012년 중수부가 기소한 사건의 1심 평균 무죄율이 9.6%로 일반사건(0.36%) 보다 27배 높아 정치적 흠집내기를 위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한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특히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발생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까지 이어진 일이 중수부 폐지를 불러왔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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