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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위헌여부 6년 끌더니…헌재 “한일청구권 협정은 심판대상 아니다”

등록 2015-12-23 19:35수정 2015-12-23 22:13

헌법재판소가 한-일 청구권 협정 관련 헌법소원을 각하한 23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 가족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재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헌법재판소가 한-일 청구권 협정 관련 헌법소원을 각하한 23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 가족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재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미수금 지급 행정소송서
적용되는 법률 조항 아냐” 각하
협정 자체 위헌·합헌 판단은 안해

미수금 1엔=2천원 규정한
‘강제동원자 지원법’은 “합헌”

시민모임 “착잡하고 아쉽다”
일본 언론들 속보…안도 분위기
헌법재판소가 1965년 이뤄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합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헌재는 임금 등 미수금 1엔을 2000원으로 환산하도록 한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23일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을 6 대 3으로 합헌 결정하면서,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심판 청구 등을 각하했다. 각하는 헌법소원 청구가 헌재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내리는 처분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가족인 이윤재씨가 2009년 제기했던 이 헌법소원은 지난 6년간 헌재에 계류된 최장기 미제 사안이었다. 이씨는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가 부친의 임금 미수금 5828엔을 1엔당 2000원으로 계산해 1165만6000원을 지급하기로 하자 “개인청구권을 제한한 한일 청구권 협정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한일 청구권 협정이 미수금 지급 행정소송에서 다투는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 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재판 전제성’이 없다고 봤다. 이 협정의 위헌 여부가 소송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헌법소원 관련 연표
한-일 청구권 협정 헌법소원 관련 연표
1965년 박정희 정권 당시 한-일 양국은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하며 청구권 협정 등을 맺었다. 청구권 협정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와 법인을 포함한 국민의 재산·권리·이익·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모든 보상이 끝났다’고 주장하며 한국 쪽과 갈등을 빚어왔다. 일본 쪽이 이날 헌재 결정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이씨의 헌소 건과 관련해 ‘재판 전제성’이 없다고 본 것이지, 청구권 협정 자체를 판단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민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어, 이와 비슷한 판결의 당사자들이 헌법소원을 낼 수도 있다.

이날 헌재는 또한 미수금 1엔을 2000원으로 환산해 지급하도록 한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이 소비자물가상승률과 환율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마련됐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미수금 지원금은 보상금이 아니라 시혜적인 지원금”이라며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수금 지원금의 액수가 많고 적음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박한철·이정미·김이수 재판관이 반대의견을 내 “위 지원금은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그들이 입었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위로하는 성격에서 더 나아가, 노무를 제공하고도 상응하는 실질적인 대가를 받지 못한 데 대한 금원을 지급하는 것”이라며 노동 대가에 상응하는 지원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1953년에 비해 2007년에 1만배 늘어난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나 1945년부터 2000년까지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산정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이와 함께 귀환하지 않은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거주자, 한국 국적이 아닌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의 유족을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의 조항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상 문제 갈등은 한-일 두 나라가 외교적으로 풀 문제이지 사법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헌재가 불합리한 결정을 내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이국언 상임대표는 “오늘 결과를 보면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는 착잡하고 아쉽다”며 “70년 기다려온 유족으로서는 한두 마디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의 각하 결정 직후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등 일본 언론들은 잇달아 속보를 쏟아내며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악재가 소멸된 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일본 언론들은 그동안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으로 회복중인 양국 관계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날은 일본의 공휴일(일왕 생일)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김지훈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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