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에디터
갑툭튀는 아닙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았단 말씀이죠. 200 말입니다. 1에서 199까지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토요판 책임을 맡은 고경태 에디터입니다. 오늘 <한겨레>는 몇번째로 신문을 찍었을까요? 지금 종이신문을 손에 쥐었다면, 1면 상단 오른쪽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8646이라는 숫자가 보일 겁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날부터 쌓인 연륜입니다. 200은 그곳에 조용히 스며든, 아직은 왜소하기 짝이 없는 비공식 번호판입니다. 7443호였던 2012년 1월28일은 또 다른 숫자 1로 기록된 날입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매주 토요판을 200번 만들었습니다. 축하파티는 안 하더라도, 조그마한 푯말이라도 세우고 넘어가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나온 이유입니다.
공식 숫자가 없는 것은 토요판의 특성 탓입니다. 독자적인 매체도 아니고 섹션도 아닌 제3의 형식으로 태어났으니까요. 일간지 몸통을 1면부터 기획물 위주로 뜯어고치되 그날치 사건뉴스를 공존시켜 콘텐츠를 혁신한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토요판’이라는 낱말도 난데없었죠. 주말판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는데, 토요판이라고 우겼습니다. 기존 주말판에 대한 선입견과 그 울타리를 뛰어넘자는 취지였습니다. 다행히 <중앙일보>를 비롯한 다른 신문들이 뒤따라 ‘토요판’ 간판을 달며 토요일치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원조인 <한겨레>에서, 토요판의 200호 여정을 모두 함께한 에디터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동안 잘하기는 한 걸까요?
아, 신문이 친절해졌다더군요. 지금 제가 쓰는 ‘친절’ 어쩌구 하는 이 코너가 대표적입니다. 편집국 기자들이 괴이쩍은 얼굴 사진을 내밀고 달달하거나 새콤한 문체로 시사 현안들을 쉽게 풀이해줘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덕분에 요즘 <한겨레>안팎으로 ‘친절한’의 문패를 건 칼럼이 확산 추세입니다. 아직 멀었다고요? 무뚝뚝하고 어려운 기사들이 여전하다고요? 아, 네.
친절하게 쓰려면 좀 길어야 합니다. 토요판 기사는 깁니다. 200자 원고지 기준 30매가 보통입니다. 커버스토리는 60매에 육박합니다. 앞으로 신문은 ‘뉴스페이퍼’를 넘어 ‘스토리페이퍼’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토요판은 그 실험무대였고요. 2014년 말 관훈언론상 저널리즘 혁신부문상을 수상한 박유리 기자의 형제복지원 커버스토리의 경우 한 편당 120매씩이나 했습니다. 한국 신문 역사상 가장 길었지요. 그럼에도 독자들은 질색하지 않았습니다. 아, 넘 무리하면 망한다고요? 적절히, 길고 짧게 균형을 맞추라고요? 네 네.
‘스토리페이퍼’의 주인공은 사람입니다. 토요판 1면 표지가 인물을 고집하는 까닭입니다. 기억하십니까? 고 윤이상 선생 부인 이수자씨를 시작으로 스마트폰 종료버튼 누르는 걸 깜빡해 이진숙 엠비시(MBC) 기획홍보본부장과의 비밀회동 내용이 털린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 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고 팜티호아 할머니, 영화 <7번방의 선물>실제 모델 정원섭 목사, 간첩조작 사건의 유우성씨, 지존파 사건 피해자 이정수씨, ‘미생’의 윤태호 작가, ‘삼천만 관객’의 영화배우 오달수씨, ‘아침이슬’의 전설 김민기씨…. 1면에는 안 실렸지만 2014년 한 해 <한겨레>최고의 에스엔에스(SNS) 공유 건수를 기록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습니다. 아, 진정 미션임파서블한 인물 섭외에 도전해보라고요? 음~.
사람 이야기의 한편엔 동물의 서사가 출렁입니다. 남종영 기자와 최우리 기자는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던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세상에 알려 결국 고향바다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흑인 해방에 비견될… 아, 아닙니다. 민망한 회고담 끝.
2015년이 갑니다. 2016년 토요판에 눈이 돌아가도록 재밌는 콘텐츠가 쏟아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시한 기획을 하나 비밀리에 준비중이긴 합니다. 참으로 시…시한, 끔찍하게 시…시…시한 2쪽짜리 지면입니다. 다담호 개봉인데 기대는 마시길. 아무튼 토요판이 200호입니다. 온·오프상에서 격려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과 늘 토요판을 빛내주시는 외부 필자님들께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 k21@hani.co.kr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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