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 개시가 최종 결정됐다. 과거사가 아닌 일반 형사사건의 재심 결정은 극히 이례적인데다 올해 8월 ‘태완이법’ 시행으로 공소시효가 사라진 사건이어서 ‘진범’을 다시 가려낼 수 있을지도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이 사건 범인으로 기소돼 만기출소한 최아무개(31)씨의 재심청구 인용 결정에 대한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했다고 14일 밝혔다. 이에 따라 최씨의 재심 개시가 최종 확정됐다. 재심은 광주고법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최씨는 16살이던 2000년 8월10일 오전 2시7분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운전을 좋게 하라”며 욕설을 한 택시기사 유아무개(당시 42)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됐고 2010년 만기출소했다. 그러나 판결 확정 이후에도 유씨를 살해한 진범 관련 첩보가 경찰에 입수되는 등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해 광주고법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검찰이 이에 재항고했고, 지난 10일 대법원이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2013년 재심 개시를 결정한 광주고법은 2003년 김아무개씨가 경찰에서 다른 사건으로 조사를 받으며 “2~3주 정도 돈 없이 생활하다가 택시기사에게 칼로 겁을 주어 돈을 뺏을 생각을 하였고,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부근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를 칼로 찔러 죽인 사실이 있다”고 진술한 사실을 중요한 증거로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또 공소사실엔 최씨가 오토바이를 급정거해 택시를 세웠다고 밝혔지만, 택시의 운행상황을 기록하는 타코미터엔 급정거를 하지 않았고, 현장 부근에 있던 사람들도 “당시 차량이 급정거하거나 싸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 점도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피고인 최씨의 통화기록과 택시 정차 기록을 봤을 때 약 1분 사이에 최씨가 피해자와 시비를 붙고 최소 12차례 칼로 찔러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서울대 법의학 교수의 의견도 채택했다. 피해자가 다량의 피를 흘렸지만, 최씨의 의복에선 혈흔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증거도 받아들였다. 최씨가 사건 3일 뒤 검거돼 3시간반 동안 불법체포·감금돼 경찰관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잠을 재우지 않는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당초 올해 8월9일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올해 8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 시행으로 공소시효 적용에서 배제돼 진범을 검거할 여지가 남아있다. 검찰과 경찰은 전담팀을 꾸려 미제 살인사건의 증거목록을 정비하는 등 재수사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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