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살)에 필요한 1조8000억원의 예산을 지방에 떠넘기자, 일부 시·도의회가 ‘누리과정은 중앙정부 책임’이라며 내년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까지 삭감하는 등 ‘보육대란’ 우려가 확대, 가시화하고 있다.
11일 <한겨레>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지방의회 심의 내용을 확인해보니, 서울·광주시와 경기도교육청의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총 8222억원)이 지방의회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이 세 곳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도 미편성됐다. 또, 세종시와 충북·전북·전남·강원 등 5곳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0원으로 짜였다.(표 참조)
나머지 9곳 지방의회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2~10개월분만 반영했다. 앞서 대구·울산·경북교육청을 제외한 14개 교육청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미편성된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런 안이 지방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당장 내년 1월부터 보육대란이 벌어지게 된다. 현재 전국의 3~5살 누리과정 대상 어린이(127만여명) 가운데 서울·경기·광주지역 어린이(58만여명)가 45.9%를 차지한다. 세종·충북·전북·전남·강원지역 어린이집 원생 수 9만2000여명을 합하면, 67만여명이 우선적인 보육대란 위기에 놓인 셈이다.
지방의회의 반발은 누리과정 예산 부담 등으로 교육청의 부채 비율이 지난해 18%에서 내년 36.8%로 폭등하는데다, 정부가 일부 지원한 지난해와 달리 내년도에는 누리과정 예산 거의 대부분을 교육청에 전가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을 사실상 ‘0원’으로 하고, 어린이집에 대한 ‘우회 지원’분 3000억원만 주기로 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누리과정 비용을 수용하면 내년도 부채 비율이 50%를 넘는데 이런 파탄의 길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정부의 누리과정 예산 떠넘기기는 지방의회와 교육청을 갈등과 대립으로 몰고 있다. 강원도의회는 도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454억원)의 절반과 교원 인건비(269억원) 등을 삭감한 뒤 교육청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압박하고 있다. 제주도의회도 법정의무경비인 정규직 인건비를 삭감했다. 장휘국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광주시교육감)은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13년 1월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보육사업 같은 전국적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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