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사가 아닌 공인회계사는 회계처리 목적이라도 토지감정평가를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이후 기업 자산감정을 놓고 벌어진 공인회계사와 감정평가사의 직종간 영역 다툼에서, 법원이 감정평가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7일 감정평가사 자격 없이 토지자산 평가를 해주고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경영자문업체 삼정케이피엠지(KPMG)어드바이저리 부대표 정아무개(51)씨와 상무 손아무개(42)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회계사 자격증 없이 이들과 함께 자산평가 업무를 한 이 회사 전 대표 이아무개(60)씨는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는 회계서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과 관계가 없어, 공인회계사법상 직무범위인 ‘회계에 관한 감정’ 또는 ‘그에 부대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기존 자산의 취득 당시 원가가 아닌 현재 가치로 평가하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면, 자산가치가 상승할 경우 부채비율이 줄어들어 대출 이자율이 낮아지는 등의 이익을 볼 수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회계기준을 조기에 적용(2011년부터 상장기업 의무적용)하기 위해 2009년10월 서울 서초동 빌딩 부지와 수원·기흥·탕정 등지의 물류센터 등 부지에 대한 자산재평가를 삼정 쪽에 의뢰했다.
회계사인 정씨 등은 평가대상 토지의 장부상 가액 3조3988억원을 7조2151억원으로 재평가하고 수수료 1억5400만원을 받았다가 한국감정평가협회로부터 고발당했다.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부감법)은 감정평가업자가 아닌데도 감정을 해주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반면 공인회계사법은 회계사의 직무범위를 ‘회계에 관한 감정·계산·정리 또는 법인설립 등에 관한 회계’로 폭넓게 규정돼 있어, 정씨 등의 감정이 부감법 위반인지 쟁점이 됐다.
앞서 1심은 3명 모두에게 유죄를 인정해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을 따른 회계목적 감정인 경우 적법하다고 보고 정씨 등 공인회계사 2명에게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토지’의 감정평가는 공인회계사의 직무 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혀 직역의 경계를 보다 명확히 하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회계사는 “일반 회계사들은 큰 관심이 없었던 사안이고, 이길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대형회계법인이 감평사의 업무 영역을 건드리려고 했으나, 결국 감평사들이 수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이재명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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