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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적 드문 밤거리,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록 2015-11-23 19:40수정 2015-11-24 09:27

그라피티 예술가 ㄱ씨는 지난 21일 밤 서울 홍익대 근처 공사장 임시 벽면에 경찰의 물대포·캅사이신 사용과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그라피티를 남겼다.
그라피티 예술가 ㄱ씨는 지난 21일 밤 서울 홍익대 근처 공사장 임시 벽면에 경찰의 물대포·캅사이신 사용과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그라피티를 남겼다.
담벼락에 ‘그라피티’ 누가, 왜
“당신은 낙서(grafiti)를 하고있다. 당장 여기를 떠나라”는 경찰에게 프랑스의 그라피티 예술가 스페이스인베이더는 “이것은 낙서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항변한다. 영국의 거리 예술가 뱅크시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에 나오는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ㄱ씨는 관습을 뒤엎고 사회를 비판하는 그라피티에 매혹됐다. 그는 지난 21일 밤에도 도시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남기기위해 거리로 나섰다.

‘물대포 맞은 의경’ ‘국정교과서’ 등
비밀작업하듯 10분 만에 그라피티
“‘욱일승천기 속 박대통령’ 그림은
다른 욕설낙서 놔둔채 지워지기도
언젠가 변화 만드는 구호되기를”

밤 11시반 인적드문 홍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만난 ㄱ씨와 동료 ㄴ씨는 검은색 후드티 모자를 덮어쓰고 마스크를 낀 채였다. 사회비판을 그라피티에 담아 표현하는 그들의 ‘예술’은 환영받지 못한다.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진행해야 했다. “이미 낙서가 좀 돼있는 공사장 임시 담벽을 봐놨어요. 어차피 철거될 담벽이라 안전할 것 같지만 워낙 단속이 심해요.” ㄱ씨가 한숨을 쉬었다. 경찰청은 지난 6월 그라피티를 범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단속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림을 그리다 들키는 그라피티 예술가들에게는 주로 ‘건조물침입’이나 ‘공동재물손괴’같은 죄명이 씌워진다.

ㄴ씨가 망을 보는 사이 ㄱ씨가 신속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속전속결’은 그라피티의 생명이다. ㄱ씨가 주로 ‘스텐실 기법’으로 그림을 남기는 이유다. 미리 준비한 도안을 오려 구멍을 만들고 그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리는 방식이다. 도안을 떼고나면 그림만 벽에 남는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10여분의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날 그가 남긴 그림은 캅사이신 탓에 고통스러워하는 경찰을 시위 참가자가 돌봐주는 모습이었다.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화제가 된 사진을 가져다가 그림으로 바꿨다고 한다. ㄱ씨는 “경찰도 시민도 모두 다 같은 국민인데 우리끼리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물대포에서 쏟아지는 물 끝에 국정역사교과서를 그려넣은 모양도 남겼다. “물대포처럼 한줄기로 자신들만의 올바른 역사를 만들겠다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ㄱ씨의 설명이다. 두 그림 주변에는 ‘2015’ ‘REPUBLIC OF KOREA’라고 적힌 작은 문자들을 새겼다. “지금은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 2015년이고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ㄱ씨는 익명 속에 감춰져 있지만 그의 그림은 보통 다음날 바로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다. 지난 8월 도심 곳곳에 그려진 ‘선글라스 낀 인물’과 ‘5163’이라는 표식, 얼마전 서울 신촌, 홍대 등지에 남겨진 ‘욱일승천기 속에 웃고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가 그린 작품이다. 각각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사용과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보도 이후 작품은 깨끗이 지워지곤했다. ㄱ씨는 원래 욱일 승천기 그림이 있었던 자리를 가리키며 “주변 욕설 낙서는 안지우고 제 그림만 골라서 지워냈다. 사회적 예술에 대한 검열”이라며 아쉬워했다.

1시간여 동안 벽 두 개에 그림들을 남기고 ㄱ씨의 손도 스프레이 페인트로 검게 물들었다. ㄱ씨는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는 계속 거리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내가 그린 이미지가 변화를 만드는 구호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두 사람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글·사진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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