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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역사교육은 나라보다 학생을 위한 것이다

등록 2015-11-10 19:46수정 2015-11-11 10:16

[국정화, 무엇이 문제인가/연쇄 기고]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이 정부는 끝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밀고 갈 모양이다. 훗날 이 일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이라 기록될 것 같다. 검정제도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등장한 지 10여년, 국정교과서 <국사>가 폐지되고 <한국사> 교과서가 되어 등장한 지 겨우 4년 만에 다시 국정교과서 <한국사>로 돌아가기로 했으니, 엄밀히 말하면 ‘국정 환원’이라 불러야 맞을 것이다.

국정교과서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교과서를 만들어내긴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 부족과 필진 미흡으로 수준 미달의 내용을 담은 ‘설익은 밥’ 같은 교과서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더 우려되는 것은 이 교과서가 보여줄 ‘의도적 부각’과 ‘의도적 배제’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하나. 그동안 국정화를 주장해온 이들은 기존 검정교과서들은 현대사 부분에 부정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실었다면서, 이를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해왔다. 이를 받아 정부 당국자들도 교과서에 긍정적인 역사를 쓰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교과서에서 이른바 ‘부정적’인 부분들은 가능한 한 줄이고 ‘긍정적’인 부분들을 늘리겠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긍정적인 것이란 경제발전, 국민소득 향상과 같은 것을 말하고, 부정적인 것이란 독재, 민주화운동, 빈부격차와 같은 것을 말한다. 교학사판 교과서가 다른 검정교과서들과 크게 달랐던 점은 서술 분량에서 전자의 비중을 크게 하고, 후자의 비중을 작게 한 것이다. 이번 국정교과서도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1960년대 이래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은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성취였지만, 그 이면에선 정치적으로는 개발독재 체제의 등장, 경제적으로는 재벌에 대한 특혜, 저임금·저곡가 정책, 사회적으로는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빈부격차의 심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이번 국정교과서에서 이런 부분들은 소략하게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민주화운동은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중요한 역사다. 4·19, 5·18, 6월 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운 사건들이다. 이와 같은 사건들은 당연히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민주화운동의 배경이 되는 5·16, 10월 유신, 12·12도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한다. 국정교과서에서 이런 부분이 어떻게 다루어질지 궁금하다.

만약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밝은 면을 크게 부각시키고, 경제성장의 어두운 면이나 독재, 민주화운동을 소략하게 다룬다면, 교과서의 국정 환원이 ‘산업화 세력’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 정부 당국은 학생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올바른 국가관, 정체성, 애국심을 갖게 하는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사를 이념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국가주의와 자유주의가 맞서고, 권위주의(독재)와 민주주의가 맞서온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만들어질 교과서에서는 올바른 국가관을 특히 강조하겠다고 하니, 국가주의를 옹호하는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예를 들어 국가폭력에 의한 각종 민간인 희생 사건,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정치적 사건 등은 누락하고, 노동자나 빈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도 배제하는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밖에도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사교과서의 국정 환원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 파동 와중에 우리는 역사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그동안 교과서나 교사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교육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학생이 되어야 한다. 역사교육은 학생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또 역사교육은 그동안 애국심을 가진 국민을 키워내는 교육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제는 국가보다는 학생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역사교육은 학생 입장에서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또 역사교육은 학생들이 자유와 평등, 평화와 인권 의식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울러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것처럼 타국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역사교육은 암기 중심이 아닌, 토론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해가야 한다. 학생들이 역사 속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사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말하고, 동료의 의견을 들으면서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토론 중심의 역사교육에서 교과서는 여러 학습자료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과서를 경전처럼 떠받들고, 그것만 외우면 된다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이제 역사교육은 교과서나 나라를 위한 교육이 아닌,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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