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한국현대사 최대의 권력 스캔들인 1973년 ‘윤필용 사건’의 주인공에게 “뇌물수수는 했으나 형을 선고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윤 소장이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조사했으나 입증되지 않자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징역살이를 시켰다.
대법원(주심 조희대 대법관)은 고 윤 전 소장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형을 선고하지 않은 채 판결을 확정(파기자판)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윤 전 소장이 뇌물을 받은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윤 전 소장은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신성공업 대표 신유호로부터 1972년 공사도급을 달라는 뜻에서 두차례에 걸쳐 수표 30만원과 현금 5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윤필용 전 소장이 1980년 특별사면을 받은 상태라 형을 선고해 윤 전 소장의 법적 지위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엔 ‘재심은 선고받은 자의 이익을 위하여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상소했을 때 원심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않는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과 비슷하다. 재판부는 “재심에서 무죄로 인정되면 무죄를 선고해야 하지만 유죄로 인정될 경우 피고인의 법적 지위를 해치는 결과가 되므로 ‘피고인에 대해 형을 선고하지 않는다’는 주문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원심을 한 서울고법은 2012년11월 징역 3년, 추징금 8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고법과 대법은 신유호의 뇌물 80만원을 제외한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맹호배구단 후원금 2550만원, 한양대 체육과 정원 확대 청탁금 400여만원, 부대운영비 명목 기업인 협조금 300만원 등을 윤 전 소장이 뇌물로 받거나 횡령했다는 1973년의 재심대상판결의 유죄 부분은 증거 불충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전 소장은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각하가 노쇠했으니 형님(이후락)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알려져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쿠데타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횡령, 수뢰, 군무이탈죄 등으로 징역 15년 벌금 2천만원을 선고받았고(12년 확정) 관련된 장성 2명, 장교 10명에게 징역형 내려졌다.
하나회의 후원자였던 윤 전 소장은 1975년 석방된 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80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윤 전 소장은 이후 한국도로공사사장과 한미친선회 이사, 한국담배인삼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윤 전 소장이 2010년7월 사망하자 아들 윤해관(59) 미주제강 회장이 그 다음달 재심청구를 했다.
지난해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에서 조응천 전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과 정윤회를 거명하며 “유신시대 윤필용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부도덕하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 뒤늦은 관심 끌기도 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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