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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크리틱]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 문강형준

등록 2015-11-06 19:14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서울 통의동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재난포럼’을 진행한 지 2주차가 지났다.(12월까지 매주 계속된다.) 나도 그중 한 회를 맡아서 재난과 파국이라는 ‘부정성’에 대한 강의를 한 바 있다. 놀라웠던 점은 포럼에 참석한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재난과 파국이라는, 한국 사회에서는 생경할 뿐 아니라 비주류적인 담론에 대한 이들의 진지함은 심지어 숙연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꿈과 희망을 느끼라고 강요당하다시피 하는 이 청년들이 왜 그 반대편에 있는 파국과 재난에 관심을 가질까?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칸드림의 의미와 양상을 다루는 수업에서 학생들은 코리안드림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는데, 이들은 코리안드림과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했다. 청년실업, 치열한 경쟁, 태생적 한계 등에 대해 학생들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의 유행은 이런 인식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방식의 변화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약하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절망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과 인식은 결국 미래에 대한, 더 정확히 말하면, ‘미래 없음’에 대한 인식이다. 미래가 불확실성, 즉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가능성 역시 상정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라면, 오늘날 청년들에게 미래는 너무나 ‘확실’하기만 하다. 종신형을 받은 죄수에게 미래라는 개념이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들에게 미래란 확실히 예상 가능한 어려움의 연속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미래는 있지만 미래는 없으며, 그 미래 없음에 대한 인식이 현재의 절망을 불러오는 것이다.

좀 더 큰 그림 속에서, 미래 없음에 대한 인식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문명생태계의 결과로 볼 수 있다. 15세기 이래 자본주의는 쓸 수 있는 한 모든 자원을 뽑아내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인간을 노예나 노동자로 변모시키며 발전했다. 인류사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은 자연(nature)과 인성(human nature) 모두를 착취하고 변화시켰다. 이 500년의 역사는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모조리 소모하는 방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착취할 ‘프런티어’가 사라진 자본주의는 여전히 ‘미래’를 말하지만, 실은 예전처럼 미래가 그 자리에 순순히 있어주는 게 아닌 상태가 되었다. 쓰나미, 온난화 등의 기후변화와 전염병의 창궐, 사회적 갈등의 폭발 등은 자본주의가 변화시킨 생태계 전체의 불균형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경향화된 청년 비정규직 및 프레카리아트의 급증은 미래 없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결과이고, 이러한 상황은 문화적으로 영속화된 불안과 절망 상태를 낳고 있다. 재벌집단에 대한 규제나 노동자에 대한 보호장치를 완전히 풀어버린 채로 작동하는 한국 자본주의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이 시리아의 난민을 받지 않는 이유는 혹시 이미 한국이 자국 출신 난민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리아 국민이나 한국의 청년이나 같은 ‘난민’일 테니까.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도 정책도 결여한 무능하고 못난 대통령과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다. ‘미래 없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사유하면서 청년의 불안을 해결할 방도를 마련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래서 ‘과거’로만 회귀하려 한다. 이들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역사교육의 좌편향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래’가 중요한 시점에 ‘과거’로, 그것도 독재시절의 퇴행적 과거로 돌아가는 이 정부야말로 진정 ‘미래’가 없다. 대통령의 임기가 2년이나 남았지만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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