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화저지네트워크 주최 ‘올바른 역사교과서 추진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시민, 학생 역사학자 등 참가자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집필자도 선생님도 학생도 모두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민들 촛불에 손 녹이며 차가운 날씨 물리쳐
국정교과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민들 촛불에 손 녹이며 차가운 날씨 물리쳐
1만여개(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은 2500)의 촛불이 31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웠다. 촛불을 감싼 종이컵에는 ‘멈춰라 역사쿠데타’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무대에는 청소년, 대학생, 교수, 교사, 역사학자 이름이 적힌 박스들이 놓였다. 보름여 동안 각계에서 31만5000여명이 참여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지가 담겨 있는 박스라고 한다. 시민들은 촛불에 손을 녹이며 8℃까지 내려간 차가운 가을 저녁 날씨를 견뎠다.
466개 시민사회·역사단체들이 모인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이날 청계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차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청소년부터 역사연구자들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국정교과서 반대한다” “나라꼴이 엉망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10대 청소년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대학생들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서대문구 대현공원, 전쟁기념관 등지에서, 역사 연구자들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행진을 해 청계광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느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불만을 무대에 올라 털어놨다.
가장 큰 박수를 받은 발언자는 경기 양주 덕계고 1학년 이권택(16)군이었다. 이군은 “교과서를 만드는 교수님, 가르치는 선생님, 배우는 학생까지 반대하고 있다. 과연 국정교과서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물은 뒤 “윗분들에게만 ‘올바른’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도 발언에 나섰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대학원생 임광순(30)씨는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내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지금 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반교육적인 기관이다”라고 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키고 있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47)씨도 무대에 올라 “역사를 지우려 해도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거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쳐주셨던 국민 여러분이 국가의 기억통제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정씨는 목이 쉴 정도로 반복해서 “(세월호 유족과 시민단체가 모인)‘4·16연대’는 국가의 기억통제와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청계광장은 정씨의 외침에 숙연해졌다.
안병욱 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도 무대에 올라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역사학자들은 오늘의 어리석은 만행과 시대착오적인 폭거를 역사에 낱낱이 기록하여 다시는 되풀이되서는 안되는 두고두고 경계할 교훈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종로 보신각을 거쳐 서울시청까지 돌아오는 행진을 벌였다.
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마지막날인 2일 각계에서 모은 국정화 반대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하기로 했다. 또 다음달 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 고지될 경우 4차 촛불집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글·영상 방준호 권승록 기자 whorun@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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