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여개 시민사회·교육단체 등으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문화예술인모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문화제를 열고 촛불을 들어 올리며 국정화 중단을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정교과서-키워드로 본 반대운동 촛불
교복차림 고교생·손팻말 주부들
광화문 광장 2000여 촛불 밝혀
“민주주의 국가니까 당연히…
나처럼 가짜 역사 배우게 해서야”
세월호 유족 “내 아이 친구를 위해
국가의 기억통제 용납할수 없어”
교복차림 고교생·손팻말 주부들
광화문 광장 2000여 촛불 밝혀
“민주주의 국가니까 당연히…
나처럼 가짜 역사 배우게 해서야”
세월호 유족 “내 아이 친구를 위해
국가의 기억통제 용납할수 없어”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가수 안치환씨가 부르는 ‘광야에서’를 목 놓아 따라 부르는 어른들 사이에서 서울 오류고등학교 2학년 전영주(17)·박은지(17) 학생은 열심히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박양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행정예고 의견제출서’를 찍어 반 친구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영주랑 의지하며 계속 나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가을비가 지나고 쌀쌀해진 저녁 날씨에 두 친구는 촛불에 손을 녹이며 서로 기대 앉았다. 이날 저녁 8시, 서울 광화문광장의 기온은 10℃까지 내려갔다.
27일 저녁, 광화문광장에는 1000여개(경찰 추산, 주최 쪽 추산 2000여명 참석)의 ‘촛불’이 켜졌다. 삼삼오오 모여든 시민들은 이날 저녁 열린 ‘국정화 말고 국정을 부탁해’ 문화제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저마다의 이유를 쏟아냈다.
바람 부는 광장에 나란히 앉은 스승과 제자는 넘어지는 촛불을 함께 세웠다. 대학에 다니는 이홍(20)씨와 이씨의 고교 시절 세계사 선생님이던 교사 김혜정(54)씨는 이날 함께 문화제에 나왔다. 김씨는 “학교 현장에서는 국정화가 잘못됐다는 말을 꾹 참고 살고 있다. 역사 교사로서의 책임의식으로 괴로워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무대에선 인디가수 김목인씨가 “대답을 못 들은 사람들이 길 위에 나와 있네, 추운 날씨에도 대답을 들으러”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 ‘대답 없는 사회’를 불렀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여행을 왔다는 수전(55)은 이날 행사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문화제라는 설명을 들은 뒤 “미국에선 국정 교과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그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정부가 정해주길 원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 생각을 교환할 자유란 소중하다”고 말했다.
무대에 선 문화·예술인들도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스카밴드 킹스턴루디스카는 “정치적 이념 때문이 아니라 상식을 생각하며 이 자리에 섰다. 역사 교과서는 어떤 수단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발언이 끝난 뒤 이들은 자신들의 노래 ‘니 말이 화나’를 불렀다. 시민들은 흥겨운 스카 리듬에 몸을 맡기고 즐거워했다. 가수 정민아씨도 “해결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미래에 찾아온다. 바로잡아야 한다”며 노래를 불렀다.
세월호 유가족 중 일부도 촛불을 들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아들 이창현(17)군을 잃은 이남석(50)씨는 이날 문화제에 참석해 “아이들이 떠난 이유마저 알려주지 않는 정부가 만든 교과서를 떠나간 내 아이의 친구들이 배우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문화제에 앞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모인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는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국가의 기억 통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광장의 촛불과 함께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도 이어졌다. 아주대 교수 148명은 이날 성명을 내어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작업이 한국 사회를 거센 갈등과 분열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절대다수가 채택하지 않는 교과서 국정제에 골몰하는 것은 다른 부문에서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을 노리는 한국 정부가, 역사에 대한 해석을 국가가 독점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역사 교과서 발행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제적 기준과 유엔의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방준호 고한솔 권승록 현소은 기자 whorun@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