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폭행사망 사건’ 누리꾼 무차별 공격
가해자 개인정보·미확인 소문 마구 퍼뜨려
누리꾼들의 ‘검증되지 않은 분노’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특정 이슈에 대한 미확인 사실들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집단분노를 유발하는 여론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는 일도 적지 않다.
1일 부산 ㄱ중학교에서 벌어진 폭행 사망 사건(<한겨레> 6일치 부산·경남판 12면) 이후 숨진 ㄴ아무개(14)군의 어머니가 썼다고 알려진 글이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지면서 가해자 ㄷ아무개(14)군을 처벌하라는 누리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이 사건에 대한 온갖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더해져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집단적으로 분노만을 표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자칫 한 개인을 다수가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제2의 개똥녀’ 사건이 될 판이다.
ㄴ군을 추모하는 누리꾼들이 수천명에 이르는 가운데, 일부 누리꾼들은 가해자 ㄷ군의 실명과 사진·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고, ㄷ군의 미니홈피를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ㄷ군이 인근 5개 학교 일진회 짱으로 수시로 폭력을 휘둘러 왔다’ ‘학교가 사건 은폐·조작에 앞장서고 있다’ ‘ㄷ군의 부모가 학교 운영위원이라더라’ 등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퍼뜨리고 있다.
현재 ㄷ군은 부산구치소에 수감돼 정식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2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ㄷ군이 보석금으로 풀려난 뒤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까지 돈다. ㄱ중학교는 홈페이지에 ‘확인이 안된 댓글에 대한 학교 쪽의 해명’을 올리고 소문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공격적인 누리꾼들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들에 대해서도 비난과 공격을 퍼붓고 있다. 포털사이트들이 명예훼손 등을 우려해 ㄷ군의 실명 등을 금칙어로 정한 것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ㄴ군 사망사건 직전에도 유명 연예인 ‘ㅂ씨와 ㅎ씨 괴담’이 사실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채 집단분노 현상을 일으켰다. 가수 ㅂ씨가 한 라디오 방송 중 동료 연예인과 전화로 연결된 상태에서 “ㅎ씨와 동침했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이에 해당 연예인들의 명예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포털사이트가 이들의 이름을 금칙어로 정하자 누리꾼들은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고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정작 소문에 거론된 라디오 프로그램의 담당 프로듀서는 “가수 ㅂ씨와 전화를 연결한 사실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런 집단분노에 대해 네이버 관계자는 “개인 정보가 노출되고 실체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소문으로 심각한 사이버 폭력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부득이하게 덧글 쓰기를 제한하고 있다”며 “누리꾼들이 냉정하게 사안을 보고 평가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진보넷의 김정우 정책간사는 “정의감에 불타는 누리꾼들의 힘으로 사건 규명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개인의 민감한 사생활 정보까지 공개하는 것은 또다른 인권침해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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