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경찰이 민주노총 주최 총파업 집회를 취재하던 ‘한겨레’ 사회부 김규남 기자의 목을 조르고 있다. 경찰은 김 기자를 연행하다가 동료 기자들과 시민들이 강하게 항의하자 연행을 중단했다. 사진 노동자연대 이미진씨 제공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 등 4대 구조개혁을 국정 하반기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가운데, 경찰이 “시민의 낮은 법질서 의식이 국가경쟁력을 훼손하고 경제활성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집회·시위에서 ‘현장 검거 강화’ 등을 공언했다. 노사정 합의를 ‘노동개악’으로 규정한 노동계의 반발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공권력을 앞세운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은 △교통질서 확립 △기본질서 확보 △국민생활 침해 범죄 근절을 뼈대로 하는 ‘생활 속의 법치질서 확립 대책’을 최근 마련했으며, 이를 내년 하반기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29일 밝혔다.
눈에 띄는 것은 ‘기본질서 확립’ 중 집회·시위 처벌 강화 움직임이다. 경찰청은 집회·시위 현장의 ‘폴리스라인’을 ‘법질서 확립 기준’으로 삼아 이를 넘어서기만 해도 현장에서 검거하겠다고 했다. 현재 경찰은 시위 참가자가 폴리스라인을 단순히 넘기만 한 경우에는 일단 채증한 뒤 사후 조사를 해왔다. 이와 함께 경찰은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인 폴리스라인 침범행위 처벌을 2배로 강화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번 대책이 4대 개혁의 지렛대 구실임을 분명히 했다. 경찰청은 관련 보고서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인용한 뒤 “대내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하반기 4대 구조개혁의 속도감 있는 추진에 따른 다양한 갈등 양상이 표출될 전망이다. 구조개혁 완수와 경제 재도약을 위해 법질서 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산출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오래전 자료들을 동원했다. ‘불법 시위 1회당 사회적 비용이 평균 910억원이 든다’는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 자료(2009년)의 경우 집회 참가자 본인의 생산 손실까지 비용에 포함시켰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법질서 회복 시 성장률이 최대 1% 상승한다’는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도 인용됐다. 진교훈 경찰청 기획조정담당관은 “경찰청장 취임 1년을 맞아 경찰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현재의 폴리스라인은 집회·시위의 안전한 보장이 아닌 통제와 진압 용도로 사용돼왔다”고 했다. 참가 인원이 예상보다 많아진 경우에도 경찰이 기존 라인을 강요해 결국 침범하게 만든 뒤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이번 조처는 정부가 노동개악 정책 등을 밀어붙이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경찰은 ‘9·23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서 도로가 아닌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위에 있던 이들까지 무차별 연행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집회·시위도 사회적 규범 안에서 진행돼야 하지만, 그 이전에 집회·시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하고 있는지 경찰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폴리스라인을 쳐놓고 이를 넘어오면 처벌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했다.
최우리 오승훈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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