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민간 사업부지 지하에서 확인된 대규모 고적지가 오롯이 보존된 채 시민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정비사업구역에서 발굴된 문화재를 전면 보존하는 것은 전국 처음이다.
서울시는 “4대문 내 공평동 1·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굴된 도로, 골목, 기와, 그릇 등을 원위치에 보존한 ‘공평동 유구 전시관’을 오는 2018년 4월께 공개할 계획”이라고 24일 밝혔다.
유구란 과거 건축의 구조·문화 등 자취를 뜻하는 말이다. 지난해 6월부터 종로구 공평동 5-1번지(옛 공평빌딩) 일대(위치도)에서는 지하 4m 깊이로 맨 아래서부터 15~16세기 건물과 분청사기, 기와, 16세기 건물과 도로, 17세기 건물과 도로, 18세기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의 건물과 도로, 기와, 그릇 등이 층층이 쌓인 채 발굴돼 주목을 받았다. 공평동은 영·정조의 충신인 번암 채제공, 일제강점기 우국지사 민영환 등이 거주했던 조선시대 중심부로, 600년의 역사가 켜켜이 압착될 수 있었다.
기존엔 매장 문화재를 박물관으로 옮기거나 새 건물의 지하에 부분 보존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공평 유구에 대해 서울시는 문화재청, 민간 사업자와 함께 반년 넘게 협의하며 보존 방침을 확정했다. 대신 사업자에게는 용적률을 애초 999%에서 1199%로 올리고, 건물 층수도 애초 에이(A)동 22층, 비(B)동 26층, 지하 8층에서 모두 26층, 지하 8층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이 건물의 지하 1층 전체가 전시공간이 될 예정이다. 공평동 유구 전시관은 높이 6m, 총면적 3818㎡로 유구 전시관 가운데 서울 최대 규모이고, 케이티(KT) 사옥에 갖춰진 유구 전시관(231㎡)의 16.5배에 이른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인식과 정책 전환을 통해 전국 처음 선보이는 민관 협력방식의 보존형 정비사업 모델”이라며 “이번 결정을 계기로 4대문 내 정비사업구역에서 발굴되는 문화재는 ‘원위치 전면 보존’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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