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역사학도는 중국 여행수첩에 이렇게 썼다. “역사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숭배의 대상으로 남는 존재들은 반드시 황제나 정복자는 아니다. 오히려 역사의 패배자를 더 기억하는 듯 하다. 신의 자리에 오른 공자와 관우 모두 당대에는 패배자였다. 이슬람권은 하산과 후세인,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예수의 죽음을 추모하며 신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왜 위대한 패배자를 더 기억하는 것일까?” 그는 힘든 여행을 통해 이런 결론을 찾았다. “역사의 승리자들이 만들어 온 세계는 언제나 고달픈 곳이었다. 위대한 자질을 지녔음에도 실패하고 만 패배자들이 성공했더라면, 이 세계는 더욱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들은 실패했기 때문에 가능성으로 남을 수 있었고, 현실이 고달플 때마다 다른 세계를 희구하는 민중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1년동안 16개 나라, 130개 도시를 돌았다. 대학에서 배운 역사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보이는대로 기록했다. 사진을 배운 적은 없는 아마추어다. 그냥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전시회를 연다. 용감하다. 육대연(24·서울대 동양사학과 대학원))씨는 “꿈꾸었던 세계일주여행을 마무리하는 전시회”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낯선 땅에서 불편함과 위험에 대한 두려움에 항상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를 갈망했다. 구체적인 이유 없이도 늘 여행의 충동을 느꼈고, 그 충동에 따라 여러 지역을 떠돌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즐겼던 가족 여행이 밑거름이 됐다. 대학)에 입학한 뒤 맨처음 혼자 캄보디아를 여행했다. 인도도 한달동안 답사했다. 졸업 직전 휴학을 했다. 본격적으로 세계일주를 하고 싶었다. 그가 선택한 곳은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북아프리카.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면, 푸른 바다에 둘러쌓인 여러 대륙 중에서도 특히 커다란 땅 한 덩어리가 눈에 들어와요.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연결된 거대한 땅, 유라시아라고 부르는 곳, 중국·중앙아시아·중동·북아프리카입니다.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광활한 대지에서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고유의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오랜 역사는 다양하고 풍부한 삶의 방식들을 만들어 왔어요. 그곳에서 우리 문화와의 유사점을 찾고 싶었어요.”
2013년 8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중국에서 시작해 우즈베키스탄~요르단~이란~터키~그리스~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이집트~모로코 등을 돌아봤다.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을 관찰했어요. 그리고 카메라에 담았어요.”
대학 입학 뒤 캄보디아 첫 단독여행
휴학 1년간 16개국 130개 도시 돌아
중국~모로코 유라시아 대륙 관통
국산 소형 카메라로 15만여장 기록
인터넷 공개 호평에 16일부터 전시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 전달하고파”
그의 아버지는 여행 경비를 도와주며 세 가지를 주문했다. 여행을 자세히 기록할 것과 여행하는 지역에 대한 책을 미리 읽고 현지에 가서 조사를 할 것, 그리고 국산 소형 카메라를 쓸 것이었다.
중학 시절부터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여행지에서 좋은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굳이 유명한 관광지를 고집하지 않았다. “정말 좋은 장면은 대부분 관광지에서 떨어진 곳, 후미진 골목에 있었어요. 그래서 주로 걸어다녔어요.”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같은 거리를 두 번, 세 번 방문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좋은 포인트와 구도를 생각해두고 다시 찾아가면 좋은 장면을 얻을 확률이 높아졌어요.”
그는 현지인의 모습을 정면으로 찍을 때는 사전에 꼭 허락을 얻었다. 스쳐가는 이의 사진을 찍을 때에는 얼굴을 정면으로 찍지 않았다. 그들의 초상권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행기간 중 15만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가운데 4000여 장을 인터넷에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경험한 새로운 영역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전 글이 아닌 사진으로 제가 보고 느낀 것을 나눠주고 싶었어요. 글과 그림은 고도의 추상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사진은 여행자가 느낀 ‘가치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요.” 그가 찍은 사진은 현지인들의 표정과 느낌을 가득 담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미 인터넷에 먼저 다녀온 이들의 사진이 많은데 굳이 따로 기록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한다. “제 경험은 다른 수많은 경험들과 같으면서도 달라요. 제가 사진으로 남긴 장면은 저만이 가진 고유의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녀요.”
그는 각 지역의 상황이나 배경과 인물이 잘 어우러지는 사진을 추구했다고 한다. 우연성과 인물의 감정을 사진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특색이 드러나는 배경을 찾아 정형화되지 않으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사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그들과의 추억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진이 목적이면 대상에 집중해야 합니다.”
젊음의 열정과 땀으로 잡아낸 사진은 16~22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유라시아의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된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