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건국대 교수(가운데)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일 관계에서 올바른 과거청산과 참다운 화해를 열망하는 한국 학자들의 선언’ 기자회견에서 선언 채택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일협정 ‘1965년 체제’ 파탄
새로운 법적 틀 마련할 필요”
“일, 식민지배 진정한 사죄를”
새로운 법적 틀 마련할 필요”
“일, 식민지배 진정한 사죄를”
한-일 관계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고민해온 중견 학자 700여명이 광복절 70돌을 앞두고 10일 ‘올바른 과거 청산과 참다운 화해를 열망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14일 내놓을 전후 70주년 담화에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문구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들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으로 만들어진 ‘1965년 체제’가 일본 쪽 책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반세기 동안 역사적 책임 회피의 근거로 작동한 사실을 한-일 양국이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올바른 과거청산과 아시아 평화의 확산을 바라는 학자’ 752명은 이날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글과 영문으로 된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은 “광복 70주년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식민지배의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한-일 양국이 우호적 관계를 확립해야 할 적기임에도 양국 관계는 고노 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95년) 이후로 퇴보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파행은 “1965년 국교정상화 협상 당시 양국 정부가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잔혹행위들을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간 일본은 국교정상화 협상으로 청구권 문제 등이 일거에 해소됐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은 2012년 국가 간 청구권이 아닌 피해자 개인 청구권은 남아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선언은 한·일 양국 모두를 향했다. 일본 정부에는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과정에서 아시아 민중들에게 자행한 학살·박해에 대한 사죄를 촉구했다. 여기에는 집단 학살된 조선 동학농민군과 의병, 3·1운동 참여자,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재일조선인, 고문·살해당한 독립운동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이 포함됐다.
또 ‘국제인도법’ 규정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재발 방지책 마련, 군·경 인권교육, 역사기념관 설치, ‘기억의 의무’ 등 구제 조처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1965년의 부실 협상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미-일 안보동맹 틀에 갇힌 소극적 자세를 벗고 일본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추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화해와 연대는 ‘풀뿌리’ 차원에서 이뤄질 때 비로소 확고한 토대를 갖추게 된다”며, 양국 시민사회가 아시아 평화의 주체로 나서자고 제안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1965년 체제’는 더 이상 법적 틀로서 기능할 수 없는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진정한 의미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식민지배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법적 틀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했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정치학)는 “아베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은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지지·두둔하는 데서 비롯됐다. 미국은 더 이상 일본에 의해 촉발된 동아시아 지역 갈등과 긴장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선언에는 역사학자는 물론 법학자, 여성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정치학자 등이 두루 참여했다. 지난달 29일에는 한국, 일본, 미국, 유럽 지식인 524명이 동아시아 갈등 해결을 위한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을 낸 바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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