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0일 서울 성동구 재향군인회 본관에서 진행된 제35대 회장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조남풍 회장이 재향군인회 깃발을 흔들고 있다. 재향군인회 제공
850만 회원을 거느린 재향군인회(향군)가 내홍에 휩싸였다. 신임 회장 취임 뒤 인사 파행 논란이 불거지더니, 선거 과정에서의 금권 매수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창립 63년 만에 노조가 설립돼 신임 회장의 인사 전횡과 비리 의혹을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재향군인회는 제대 장병 간 친목 도모와 복지 증진, 안보 대응 활동을 목적으로 1952년 창설됐다. 향군은 서울 잠실에 41층짜리 회관을 보유하고, 10개의 회사를 거느리는 등 ‘재벌’급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1970년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중앙고속과 철도객차 청소용역을 하는 향우산업, 군대 불용품을 처리하는 향우실업을 세웠다. 그 뒤 통일전망대와 휴게소사업본부 등 산하 기업을 늘려, 지난해에는 10개 기업에서 415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향군은 이런 수익사업으로 2015년 예산 중 189억원을 충당하고 나머지 23억원을 국가보훈처에서 지원받는다.
이런 향군에 지난달 29일 창립 63년 만에 처음으로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조에 ‘빨갱이’ 단어를 붙이던 보수 안보 단체에서 어떻게 노조가 만들어진 것일까. 소용돌이는 지난 4월 조남풍(77·육사 18기) 회장 취임 이래 시작됐다.
70년대 정부 지원 힘입어 사업 확장
작년 10개 기업에서 4159억 매출 ‘하나회’ 핵심…박근혜 후보 안보 고문
조남풍씨 지난 4월 35대 회장 취임
‘산하기업 사장에 돈 받고
대의원에 금품 살포’ 문서 나와
당사자들은 의혹 부인
직원들 노조까지 설립…의혹 폭로 ■ 조 회장의 인사 규정 위반 조 회장은 현역 시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결성한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핵심으로, 노 전 대통령 직계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12월 대선 직후 자신의 첫 국군 보안사령관(현 기무사령관)으로 임명했을 정도다.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직위해제됐다가 육군 교육사령관과 1군사령관을 거쳤다. 1993년 하나회 숙청을 주도한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율곡사업 비리와 관련돼 감사원 조사를 받고 전역했다. 이후 김대중·정몽준 대통령후보 캠프 안보특보를 지냈고,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대통령 후보 안보고문을 맡았다. 조 회장은 2009년과 2012년 향군 회장 선거 낙선 뒤 삼수 만에 회장이 됐다. 지난 4월 5명의 회장 후보가 나온 35대 회장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380명의 대의원 중 250명(66.3%)으로부터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조 회장은 취임 직후 외부 사람들을 대거 끌고 들어와 향군 직원들의 반발을 사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노조 설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조 회장의 인사에 반발한 향군 직원들의 진정서를 접수한 보훈처는 지난달 26일부터 특별 감사를 벌였다. 보훈처는 지난 6일 중간발표에서, 조 회장이 공개채용 규정을 어겨가며 조아무개씨를 경영본부장으로 특별 채용했다고 밝혔다. 또 보훈처 승인 없이 재정예산실장이란 1급 자리를 신설해 새 사람을 앉혔고, 향군 정원인 100명을 초과해 12명을 더 뽑았으며, 이 가운데 부장급 8명은 ‘60살 이하 3년 이상 복무가능자’만 채용하도록 한 규정을 어기고 60살 이상으로 채용했다고 지적했다. 보훈처는 “규정 위반이 명백한 사항에 대해 임용취소를 명령한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이런 인사를 한 것은 향군 개혁 때문이라고 반론을 폈다. <한겨레>가 입수한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조 회장은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재향군인회 본부에서 연 직원 간담회에서 “재정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재정과 예산 부서를 통합관리하는 재정예산실장을 만들었고, 안보연구소 확대를 위해선 교수, 박사들을 데려와야 하는데 대부분 60살을 넘긴 사람들”이라고 해명했다. ■ 조 회장 ‘금권 선거’ 의혹 ‘인사 비리’를 두고 조 회장과 노조가 갈등하는 과정에서 논란은 더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조 회장의 ‘금권 선거’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조 회장 후보 캠프 사람들이 향군 산하 기업 사장 인사 청탁 명목으로 수천만원의 돈을 받고, 일부 대의원들에게 각각 수백만원의 돈을 뿌렸다는 정황이 기록된 문서가 나왔다. <시사저널>에도 보도된 노조 입수 문서(사진)는 A4 용지에 손글씨로 ‘1인 500만원’이라는 내용과 4월7~9일 날짜별로 장소, 시간, 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다. 노조 쪽은 대의원이 속한 지부명과 금품 전달 장소, 시간 등을 기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초 208명 계획, 230~240명 살포’라는 대목도 있다. 끝 부분에는 “특이사항: 전달 후 권○○ 비서실장에게 업무완료 (문자) 결과 보고”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당시 권○○ 캠프 비서실장은 현재 향군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향군 산하 기업체 사장 인사 관련 청탁을 받은 것으로 노조 쪽이 추정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상조회 사장 인사건’이라는 소제목 아래 ‘5월 초-5천만’, ‘6월12일 오후 5시30분 교대역 커피숍’, ‘충주호(관광선)’, ‘통일전망대’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노조 쪽에서는 인사 청탁 건으로 돈을 받아 대의원들에게 나눠줬음을 말해주는 자료라고 보고 있다.
문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조 회장은 7일 직원 간담회에서 한 직원이 선거 과정의 금품 살포 의혹에 대해 묻자 “대의원에게 돈 한 푼 쓰지 않았다”고 했다. 권 비서실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나와 관계없는 일이고 그런 문서를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전달자’로 이름이 적힌 김아무개씨는 “내가 왜 거기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각 지부 대의원들도 “선거 전에 조 회장 쪽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전달자’로 이름이 나온 또 다른 김아무개씨는 “나는 전달한 사람도 아니고 돈을 구경한 사람은 아니지만 ‘가방맨’(돈 전달자)은 따로 있다”면서도 더 이상의 답변은 하지 않았다.
■ “(횡령 사건 관계자한테) 돈 빌렸다”
조 회장은 금권선거 의혹 해명 과정에서 자신이 향군에 790억원의 손해를 끼친 신주인수권부사채(BW) 횡령 사건 관계자들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7일 직원 간담회에서 노조 관계자가 “선거 자금이 횡령 사건 관계자들로부터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 조 회장은 “그 사람한테만 꾼 것이 아니다. (내가 자금이) 고갈 상태에 있으니까 이런저런 지원을 받았고 공짜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 횡령 사건은 최아무개 전 향군 유케어사업단장이 2011년 향군 허락 없이 4개 상장사에 군 명의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줬고, 이로 인해 향군에 790억원의 손해를 입힌 사안이다. 최 전 단장은 1심에서 32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인정돼 3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2심 재판 중이다. 이 사건 여파 등으로 향군은 부채가 현재 5500억원에 이른다.
노조가 의혹을 제기하는 대목은 조 회장이 특채로 임용한 조아무개 경영본부장이 최 전 단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조 본부장은 최 전 단장이 대표이사였던 회사의 부회장을 지냈다. 노조 관계자는 “최 전 단장이 구명받기 위해 조 회장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하고 측근인 조 본부장을 향군에 보낸 것이 아닌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여러 차례 조 본부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휴대전화 착신을 정지한 상태여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향군 노조가 반발하자 지난 9일 사직했다.
보훈처는 금권선거 의혹에 대해서도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빠르면 이번주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노조 관계자는 “검찰도 금권선거를 내사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작년 10개 기업에서 4159억 매출 ‘하나회’ 핵심…박근혜 후보 안보 고문
조남풍씨 지난 4월 35대 회장 취임
‘산하기업 사장에 돈 받고
대의원에 금품 살포’ 문서 나와
당사자들은 의혹 부인
직원들 노조까지 설립…의혹 폭로 ■ 조 회장의 인사 규정 위반 조 회장은 현역 시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결성한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핵심으로, 노 전 대통령 직계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12월 대선 직후 자신의 첫 국군 보안사령관(현 기무사령관)으로 임명했을 정도다.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직위해제됐다가 육군 교육사령관과 1군사령관을 거쳤다. 1993년 하나회 숙청을 주도한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율곡사업 비리와 관련돼 감사원 조사를 받고 전역했다. 이후 김대중·정몽준 대통령후보 캠프 안보특보를 지냈고,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대통령 후보 안보고문을 맡았다. 조 회장은 2009년과 2012년 향군 회장 선거 낙선 뒤 삼수 만에 회장이 됐다. 지난 4월 5명의 회장 후보가 나온 35대 회장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380명의 대의원 중 250명(66.3%)으로부터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조 회장은 취임 직후 외부 사람들을 대거 끌고 들어와 향군 직원들의 반발을 사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노조 설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조 회장의 인사에 반발한 향군 직원들의 진정서를 접수한 보훈처는 지난달 26일부터 특별 감사를 벌였다. 보훈처는 지난 6일 중간발표에서, 조 회장이 공개채용 규정을 어겨가며 조아무개씨를 경영본부장으로 특별 채용했다고 밝혔다. 또 보훈처 승인 없이 재정예산실장이란 1급 자리를 신설해 새 사람을 앉혔고, 향군 정원인 100명을 초과해 12명을 더 뽑았으며, 이 가운데 부장급 8명은 ‘60살 이하 3년 이상 복무가능자’만 채용하도록 한 규정을 어기고 60살 이상으로 채용했다고 지적했다. 보훈처는 “규정 위반이 명백한 사항에 대해 임용취소를 명령한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이런 인사를 한 것은 향군 개혁 때문이라고 반론을 폈다. <한겨레>가 입수한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조 회장은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재향군인회 본부에서 연 직원 간담회에서 “재정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재정과 예산 부서를 통합관리하는 재정예산실장을 만들었고, 안보연구소 확대를 위해선 교수, 박사들을 데려와야 하는데 대부분 60살을 넘긴 사람들”이라고 해명했다. ■ 조 회장 ‘금권 선거’ 의혹 ‘인사 비리’를 두고 조 회장과 노조가 갈등하는 과정에서 논란은 더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조 회장의 ‘금권 선거’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조 회장 후보 캠프 사람들이 향군 산하 기업 사장 인사 청탁 명목으로 수천만원의 돈을 받고, 일부 대의원들에게 각각 수백만원의 돈을 뿌렸다는 정황이 기록된 문서가 나왔다. <시사저널>에도 보도된 노조 입수 문서(사진)는 A4 용지에 손글씨로 ‘1인 500만원’이라는 내용과 4월7~9일 날짜별로 장소, 시간, 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다. 노조 쪽은 대의원이 속한 지부명과 금품 전달 장소, 시간 등을 기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초 208명 계획, 230~240명 살포’라는 대목도 있다. 끝 부분에는 “특이사항: 전달 후 권○○ 비서실장에게 업무완료 (문자) 결과 보고”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당시 권○○ 캠프 비서실장은 현재 향군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재향군인회 노동조합이 입수한 조남풍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 캠프에서 지난 4월 선거 직전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을 대상으로 금품 살포를 한 정황이 담긴 캠프 내부 문서. ‘1인 500만원’이라는 글씨 아래, 돈을 전달한 날짜와 시간, 장소를 적은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돼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