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ㄱ씨는 휴무일에 납품업자 ㅇ씨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집 근처를 지나다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는 ㅇ씨는 “‘치맥’이나 하자”며 ㄱ씨를 동네 치킨집으로 불러냈다. 평소 ‘좋은 데 한번 가자’며 노골적으로 접대를 하려는 ㅇ씨를 피했던 ㄱ씨는 집 근처에서 보자는 말에 별 부담 없이 나갔다고 한다.
맥주를 한잔 하는데 ㅇ씨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근처에 사는 여자 후배다. 합석하고 싶다는데 불러도 되겠느냐”고 했다. 곧이어 나타난 ‘여자 후배’는 ㄱ씨에게 스킨십도 마다하지 않았다. 술자리가 길어지자 ㅇ씨는 “급한 일이 생겼다”며 먼저 자리를 떴고, ㄱ씨는 이 여성과 모텔로 향했다.
연애감정은 이튿날 술이 깨자 의심으로 바뀌었다. ㅇ씨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로 후배가 맞냐”고 묻자 “사실은 접대를 하려고 미리 돈을 주고 유흥업계 여성을 불렀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처럼 ‘여자 후배 합석’을 빙자한 불법적 접대가 일부 업종 영업직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접대를 꺼리는 상대방의 집 근처로 찾아간 뒤 ‘맥주 한잔→여자 후배 합석→성관계’로 이어지는 과정은 비슷하다.
대기업을 상대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ㅂ씨는 “대기업 담당자의 집 근처에 가서 맥주 한잔 하자고 불러낸 뒤 미리 연락해둔 여성과 통화해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술잔을 주고받더니 둘이 금방 친해지는 것을 보고 나는 먼저 자리를 떴다”고 했다. 전문직을 상대하는 영업사원 ㅅ씨는 접대 자리를 계속 거부하는 사람에게 회사 후배한테서 이런 방식을 전해 듣고는 써먹었다고 한다. 한 영업사원은 “‘여자 후배’는 관련 업소에서 소개를 받거나 조건만남 채팅 앱 등을 통해 섭외한 뒤 미리 ‘대본’을 맞춘다”고 했다.
이런 방식은 성매매 단속을 ‘우회’하는 불법적 수단일 수 있어 경찰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납품·입찰 비리 등에 밝은 수도권 경찰서의 한 수사과장은 2일 “대상은 주로 성접대를 부담스러워하는 중간관리자급”이라고 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유흥주점에서 성접대가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적발하더라도 서로 ‘화간’이라고 주장하면 처벌하기가 애매해진다”며 단속·처벌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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