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혐의 대학교수 국외출장때
국회의원 보증받아 출금 풀려 주목
도주해도 보증인 형사책임 못물어
구속력 약하고 피해자 명예훼손 우려
법조계 “인신석방 제도 보완을” 지적
국회의원 보증받아 출금 풀려 주목
도주해도 보증인 형사책임 못물어
구속력 약하고 피해자 명예훼손 우려
법조계 “인신석방 제도 보완을” 지적
국고보조금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차승재(55)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가 지난 4월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의 신원보증으로 출국금지가 풀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원보증 제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차 교수의 사례와 달리 수사 현장에서는 신원보증 제도가 법적 구속력도 약하고 잘 쓰이고 있지 않아, 현실적인 ‘인신석방’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출국금지를 당한 불구속 피의자가 해외 출국을 위해 받는 ‘신원보증서’에는 출국 사유와 귀국 일시, 신원보증인의 인적 사항 등이 담긴다. 경찰은 신원보증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담당 검사의 지휘를 받아 출국금지 해제 여부를 정한다. 경찰의 요청으로 법무부가 지난 2월12일부터 출국을 금지한 차 교수도 “사업차 중국을 방문해야 한다”며 진 의원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서울 마포경찰서에 서류를 제출한 뒤 ‘출국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신원보증이 널리 쓰이지 않는 분위기에서 현직 국회의원이 보증인으로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가족의 신원보증 정도로는 어려우니 지명도 높은 인물이 보증을 서도록 해달라고 했더니 현직 국회의원의 신원보증을 받아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 교수의 사례와 같은 신원보증은 경찰서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 수사과장은 “신원보증 자체가 많이 줄고, 도주 우려가 없는 경미한 사건에 대해서는 신원보증 없이도 내보내주는 경우도 꽤 된다. 신원보증이 필요할 정도로 큰 사건이면 구속영장을 신청해서 신병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검사는 “신원보증인이 생긴 건 과거 통신수단이 없을 때 불구속 피의자를 풀어주고 나중에 연락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그럴 일이 거의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일선 수사현장에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하기 어려운 불구속 피의자에게 ‘심리적 보증’을 받기 위한 도구로 신원보증 제도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신원보증 자체는 의미가 없다. 일종의 ‘심리적 안전장치’다. 풀어줄 때 믿는 구석이 있으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법의 하나에 불과하다. 신원보증으로 풀려난 피의자가 도망쳐도 보증인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법조계 안팎에선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원보증 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인신석방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름 밝히길 꺼린 판사 출신 변호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입건 사실을 알려 보증을 받는 신원보증 제도 자체가 피의자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한국의 사회 발전 정도에 비해 후진적이다. 보석금 제도 확대와 같이 현재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인신석방 제도를 폭넓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오승훈 방준호 이경미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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