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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물고기의 눈과 메르스

등록 2015-06-12 18:41수정 2015-06-28 17:17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신문의 모든 면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광고? 그렇다면 기자들 월급이 지금보다 많을 테지만, 의외로 사진이다. 대부분 한 장으로 승부를 보는 신문사진은 주제의식이 강하다.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사진기자들은 프레임 안에 어떤 요소를 넣고 뺄지, 어떤 부분을 부각시킬지,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광학적 기술을 동원할지 고민을 하면서 셔터를 누르게 된다. 그게 잘 안되면 신문사 생활이 힘들다. 사진은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 사진을 꺼내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자리는 만들고 싶다. 다만, 인터넷에 사진기술을 알려주는 정보가 넘치는데 굳이 이 면에서 사진 잘 찍는 방법을 논하진 않으려 한다. 동료의 사진을 매일 마감하고 봤던 사진부 뉴스팀장으로 매체에서 쓴 사진, 혹은 안 쓴 사진을 맘대로 한 장 뽑아서 기술과 사정 그리고 내용과 뒷담화까지 격주로 꺼내보려 한다. 최대한 가볍고 깊이가 느껴지지 않게 말이다.

카메라 렌즈 중에 어안렌즈라는 게 있다. 인간의 시각이 약 47도 안팎이라면 이 렌즈는 180도 이상을 담을 수 있는 초광각 렌즈다. 주변부로 갈수록 왜곡이 심해 신문에서는 어쩌다 쓸 뿐 일상적으로 사용하진 않는다. 조물주가 물고기를 만들 때 물속의 저항 때문에 유선형으로 뽑아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고개를 좌우로 돌릴 수 있는 목뼈 붙이는 것을 까먹었다나? 그래서 두 눈을 머리의 양쪽에 하나씩 붙여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다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어안렌즈’란 물고기 눈처럼 양쪽 다 보인다고 지은 이름이다.

그런데 사실, 물고기가 이 렌즈처럼 본다면 왜곡이 너무 심해 중앙부에서 멀리 떨어진 물체가 먹이인지 천적인지, 몸집이 큰지 작은지, 짝짓기 상대인지 라이벌인지, 구분이 되질 않아서 딱 멸종하기 좋을 듯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좌우를 넓게 보기 때문이 아니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수면 쪽을 볼 때 빛의 굴절에 의해서 사진처럼 보여서(너무 과학적이라 여기까지) 그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물고기가 어떻게 볼지는 잡아서 물어볼 수도 없지만, 아무튼 인간이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는 탁 터진 화각을 갖고 있을 것만큼은 확실하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엔 대체로 이의를 달지 않는다. 원래 목적이 하늘의 구름양을 측정하기 위해 기상용으로 개발된 것이라 전천(全天)렌즈 또는 스카이렌즈라고도 한다.

이 물고기 눈 같은 것을 들고 김성광 기자가 휴일의 광화문 광장을 스케치했다. 신문에 광화문 앞이 빈 경우는 일 년에 평균 두 번 정도가 나오는데 명절 때와 휴가가 절정일 때다. 이맘때의 광화문 스케치 사진은 야외활동 하기에 적당한 날씨 덕분에 오히려 사진과는 반대로 생동감이 흘렀다. 가장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계절에 텅 빈 도시를 찍는 사진기자의 맘도 그다지 편치 않았으리라. 역시 어안렌즈답게 세종로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부로 갈수록 왜곡이 심하지만 정중앙에 앉아 계신 세종대왕만큼은 똑바로 서서 사진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러나 이렇게 넓게 잡힌 앵글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다. 아무리 일요일이지만 서울시내를 가득 채웠던 차량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메르스가 덮쳐버린 2015년 6월7일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은 사람도 차량도 자취를 감춘 유령의 도시처럼 변해버렸다. 사진의 왼쪽 끝 편으로 보이는 집에 사시는 분은 이날도 별 반응이 없었다. 메르스가 발생한 지 12일이 돼서야 ‘메르스’ 하고 잠깐 언급하신 이분은 발생 17일이 돼서야 현장을 방문했다. 컨트롤타워가 누구냐는 질문엔 여기가 아니라고 극구 우긴다. 격리자가 3천명을 넘어서고 발생 지역도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학교들은 문을 닫고 각국의 전문가들은 우리를 보고 연구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다. 국격이 심하게 돋아 목에서 울컥한다. 큰기침으로 그 기운을 가라앉히고 싶지만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꾹 누른다. 기울어진 사진 가운데 우뚝 서서, 아니 앉아서 중심을 잡아준 세종대왕이 갑자기 새롭게 보인다.

윤운식 사진부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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