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차 거부 택시와 시비 휘말려
‘벌금 150만원’ 못내 수배자 신세
“벌금제, 당장 못내는 이 배려 없어
장발장은행 만나 세상의 도움 느껴”
‘벌금 150만원’ 못내 수배자 신세
“벌금제, 당장 못내는 이 배려 없어
장발장은행 만나 세상의 도움 느껴”
큰 죄를 짓고도 특별사면을 받아내려고 ‘전관예우’가 통하는 변호사에게 돈을 싸들고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소한 잘못에도 벌금 낼 돈이 없어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이들이 해마다 4만여명이나 된다.
이들에게 ‘벌금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장발장은행이 지난 2월25일 문을 연 뒤 처음으로 ‘대출금 전액 상환자’가 나왔다. 3월19일 4차 대출자로 선정돼 벌금 150만원을 빌린 최아무개(26)씨가 주인공이다.
“벌금 낼 돈을 빌려준다고 했을 때부터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 생기면 속 시원하게 먼저 갚자’고 생각했어요. 믿고 빌려주는 돈이니까 당연히 갚아야죠.” 10일 휴대전화 넘어 들리는 최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통신사 대리점에서 휴대전화 판매를 하는 최씨가 벌금을 내게 된 것은 누구나 겪을 법한 ‘한 번의 실수’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늦은 밤, 술을 마신 최씨는 승차 거부를 하는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었다. ‘빈 차’라는 빨간불이 들어온 택시가 여럿이었지만 최씨 집 쪽으로 가겠다는 택시는 없었다. 욱하는 마음에 택시 뒷좌석 문을 발로 걷어찼다가 문이 찌그러졌고, 택시기사와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쓰고 나온 다음날, 최씨는 피해 택시기사에게 사과하려 했다고 한다. 택시기사는 차량 수리비 20만원을 포함해 합의금으로 300만원을 요구했다. 최씨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뇌출혈로 쓰러져 2년간 병상에 누워 있던 최씨의 아버지는 한 달 전 세상을 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카드·보험 영업, 휴대전화 판매로 근근이 살아온 최씨에게 아버지 병원비와 장례비용에 들어간 빚 3000만원이 무겁게 남았다.
결국 최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법정에 섰다. 지난해 말 법원은 최씨에게 재물손괴·폭행·상해죄를 물어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벌금 분할납부를 신청했지만 자격 미달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제때 벌금을 못 낸 최씨는 수배자 신세가 됐다.
장발장은행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잡히면 노역장에 가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장발장은행을 만나서 ‘그래도 세상이 도와주는구나’ 느꼈어요.”
최씨는 장발장은행에서 대출받은 150만원을 이달부터 매월 25만원씩 6개월간 갚아가기로 ‘약정’했지만 지난 9일 한번에 다 갚았다. 감옥에 가지 않게 되면서 일을 할 수 있었고 때마침 친척에게 빌려줬던 돈도 들어온 덕이다.
“벌금을 못 내는 상황을 설명하려고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바로 낼 형편이 아니어도 벌금을 낼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씨는 현행 벌금 제도에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전액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장발장은행은 지금까지 모두 155명에게 2억8600여만원을 빌려줬다. 이 가운데 29명이 799만원의 대출금을 일부 상환했다. 후원계좌는 하나은행 388-910009-34004(예금주 장발장은행).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