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서울 강남구·서초구의 유치원과 초등학교들에 휴업령이 발동된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체온계로 발열검사를 받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메르스 비상
학부모들 문의 전화 쇄도…아이 맡길 데 마땅찮아 ‘번개 휴가’
학부모들 문의 전화 쇄도…아이 맡길 데 마땅찮아 ‘번개 휴가’
맞벌이를 하며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장아무개(44)씨는 8일 급히 휴가를 냈다. 지난 5일 학교로부터 ‘8~10일 메르스로 인한 휴업에 들어간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번갈아 하루씩 휴가를 쓰고, 사흘째인 10일에는 동네 복지관에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은 1~2학년 대상이기 때문에 4학년인 장씨 부부의 아이는 해당되지 않는다. 시댁이나 친정에 도움을 구할 수도 없는 ‘육아 독립군’인 장씨 부부는 “갑작스런 휴업 결정에 ‘멘붕’에 빠졌다. 휴가조차 낼 형편이 안 되는 다른 맞벌이 부부들은 어쩌냐”고 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여파로 휴업·휴원하는 학교·유치원이 급증하면서,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한 맞벌이 가정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첫 사망자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 2일 휴업·휴원한 학교와 유치원은 149곳인데, 엿새가 지난 8일 1970곳으로 13배 이상 폭증했다. 특히 서울 강남·서초구 유치원 69곳과 초등학교 57곳 등 126곳, 경기 수원·용인·평택·안성·화성·오산·부천 등 7개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 1255곳에선 맞벌이 학부모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지역 여러 유치원과 초등학교엔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지를 묻는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직 휴업을 결정하지 않은 학교들에서는 휴업 여부를 놓고 학부모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일도 있다고 한다. 서울 구로구에서 초등학교 1·4학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 김아무개(40)씨는 “일부 학부모들이 우리도 휴업을 해야한다고 나섰는데, 나처럼 대안 없는 맞벌이 부모들은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낼 수밖에 없다. 휴업을 해도 어차피 학교에 가는 셈이라,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어 휴교를 주장하는 부모들이 야속하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맞벌이 부모들의 우려를 감안해 휴업 중 이용 가능한 돌봄교실이 잘 운영되게 하고, 휴업 중에도 개방하는 학교 도서관에서 체온검사와 위생관리를 철저히 할 계획”이라고 했다.
방준호 이수범 기자 whor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