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수화 강좌를 듣는 시민들이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용산구 수화통역센터에서 ‘약속하다’를 뜻하는 수화를 따라 하며 배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오늘 ‘농아인의 날’…수화 배우는 사람들
용산 수화통역센터서 무료수업
직장인부터 대학원생·주부 등 열기
“청각장애인 친구 소개로…”
“지하철서 본 수화 대화 궁금해”
“청각장애인 위한 미술수업 하고파”
용산 수화통역센터서 무료수업
직장인부터 대학원생·주부 등 열기
“청각장애인 친구 소개로…”
“지하철서 본 수화 대화 궁금해”
“청각장애인 위한 미술수업 하고파”
주먹 쥔 오른손을 머리 옆에 붙였다가 들어올리면서 다섯 손가락을 편다(잊어버리다). 엄지와 중지를 동그랗게 말고 검지를 펼친 뒤 입에 갖다 댄다(안 된다). 왼손 엄지를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감싼다(꼭). 주먹을 쥔 오른손을 머리 옆에 붙인다(기억하다).
양손을 바삐 움직이면 이런 문장이 완성된다. “잊어버리면 안 돼요. 꼭 기억하세요.”
‘농아인(청각·언어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2일 오전, 세계 여러 나라 언어가 쓰이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번화가. 한국농아인협회 용산구지부 부설 수화통역센터에서는 수화 교육이 한창이었다. 이곳 직원인 유상철(26) 청각장애인통역사가 기초 수화를 배우러 온 비장애인 8명에게 수화로 ‘배운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말을 손으로 건넸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러 온 이들은 검지를 코에 갖다 댄 뒤 물결을 그리며 떼는 손동작으로 “멋있다”고 유씨에게 답했다.
수화통역센터는 이날부터 8월6일까지 일주일에 두 차례 무료 수화 수업을 한다. 장애인과 소통을 원하는 비장애인들이 갖가지 이유로 수업을 듣는다. 보험설계사 김유경(43)씨는 청각장애인 친구를 소개받은 뒤 혼자 수화를 공부하다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대학원에서 미술치료를 전공하는 김보라(30)씨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미술치료 수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주부 이종희(47)씨는 지하철에서 청각장애인 여성들이 수화로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는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해 수업을 듣게 됐다고 한다. 17개월 된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찾아온 우순미(42)씨는 퇴역군인이다. 우씨는 “현역 시절 봉사활동을 하며 수화를 처음 접했다. 손을 많이 쓰니 아이 두뇌 발달에도 좋아 보인다”고 했다. 수화로 승객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항공기 승무원이 꿈이라는 취업준비생과 특수교사가 꿈인 학생도 수업을 듣는다.
외국어 공부처럼 수화 학습도 어렵다. 수화 사전에 올라 있는 단어만 6000개에 이른다. 실제로 청각장애인들이 쓰는 단어는 3만80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지역마다 ‘수화 사투리’도 있다. 청각장애인은 원래 이름 말고도 수화로 표현하기 쉬운 짧은 이름을 따로 갖고 있다. 주의할 점도 있다. 수화를 할 땐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표정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 청각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입을 가리고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수화통역센터의 신명선 과장은 “외국어처럼 수화도 계속 써야 잊지 않는다. 다른 장애와 달리 청각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려면 수화를 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찾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15만여명에 달하는 청각장애인은 소통에 목이 마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가공인 비장애인 수화통역사는 1245명, 청각장애인 수화통역사는 447명에 불과하다. 허명훈 센터장은 “청각장애인도 은행, 경찰서, 백화점 등 비장애인이 가는 모든 곳을 다닌다. 지역마다 수화를 가르치는 센터가 있는데, 수화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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