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경북 상주시 적십자병원 영안실에서 시민운동장 압사사고로 숨진 중학생 황인목군의 친구들이 조문을 하자, 황군의 할머니와 누나가 “인목아! 친구들이 왔는데 너는 어디로 갔냐”며 울부짖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어이없는 ‘압사사고’로 11명이 희생된, 인구 11만3000명의 작은 도시 경상북도 상주.
현수막 아래 굴곡없이 평탄한 길에는 교복의 남학생, 장바구니 실은 아주머니, 치마입은 소녀까지 자전거가 지나간다.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자 한 손으론 핸들을 잡고, 또 다른 손으론 능숙하게 우산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 흔하게 보였다. 인구 11만3000명에 자전거는 8만5000대, 1인당 0.7대꼴, ‘자전거의 도시’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고 후 좁은 상주 시내는 서울과 인근 도시에서 몰려온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뤄, 자전거가 다니는 평화로운 풍경은 이미 깨져 있었다.
상주시청 부근 재래시장의 한 국밥집 주인은 “매년 해오던 자전거축제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건 처음”이라며 “도대체 얼마나 준비를 안 했으면 사람이 그렇게 죽어나갈 수 있겠느냐”며 분노했다. 시청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길가에 잔뜩 걸린 ‘도로공사 유치’ ‘경북도민 체육대회 유치’ 등 현수막을 가리키며 “공공기관을 유치한다 뭐다 해서 올해는 행사가 너무 거창했다”며 혀를 찼다.
기자가 묵었던 숙소의 주인은 “내 친구들도 공연을 본다고 나갔는데, 사고 뉴스가 나온 뒤로 무사한 지 전화를 거느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내 가족이나 친구 중에 다친 사람은 없지만 다 같은 상주 사람인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걱정했다.
상주시청 옆 문화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유흥업소 148곳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근조’ 현수막을 내걸고 6일 하루간 휴업을 결의했다. 시민들 모두 슬퍼했지만 이번 행사를 주최하고 떠들석하게 홍보했던 시청쪽은 대응책보다는 ‘책임론’만 내세워 눈총을 샀다. 사고 직후 희생자들이 안치돼 있는 병원에는 이상배 국회의원을 비롯한 시의회 의원, 보건소장 등이 줄을 이어 방문했다. 그러나 시장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번 사고로 손자 인규(14)와 인목(12)이를 잃은 황의수(70)씨는 “도대체 왜 시장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거냐”고 분노했다. 밤 12시가 돼서야 상주 성모병원에 모습을 드러낸 김근수 시장은 “사고수습 대책반을 꾸리느라 늦었다”며 “최선을 다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황급히 떠났다. 희생자를 위한 빈소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일부 유족들은 병원으로 왔다가 시 외곽쪽의 장례식장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비가 후두둑 떨어졌지만 유족들을 위한 천막도 신속히 마련하지 않았고, 정확한 사고 내용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사고 9시간 뒤 열린 유족 대책회의 소식을 듣고 나타난 담당국장도 “사고 원인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최쪽인 시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는 모든 걸 엠비시와 기획사와 협의해, 안전에 관한 모든 것을 경비업체에 맡겼고, 현재 경찰조사 중이라 정확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규정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고 다음날 합동분향소에서 시장은 “경찰서에서 사고 경위에 대한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어 정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다”고 말해 유족들로부터 “여태 사고 경위하나 파악하지 못하고 무얼했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김 시장은 “자전거축제는 상주시 주최 행사이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할 뜻은 전혀 없다”며 “유족들과 대화를 통해 장례절차와 보상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김근수 시장과 행사 진행을 맡았던 국제문화진흥협회 대표가 매제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이 일었을 때도 시청쪽은 시원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행사를 주관한 박동석 행정지원국장은 “협회 대표가 시장의 매제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특혜를 준 것은 아니”라며 “업체쪽에서 워낙 좋은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실적도 없는 업체에 단순히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만으로 행사를 맡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실무자들이 제대로 검토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관리자가 일일이 계약 내용까지 살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성의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던 김근수 시장은 ‘시청-하청업체-엠비시-경찰’을 두고 벌어지는 책임 공방을 빌미로 사고 사흘째 되는 6일까지 범시민 보상대책위의 구성을 미뤘다. 그 사이에서 애가 타는 건 희생자의 유족들이다. 유족들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시청쪽이 우선 보상을 하고, 나중에 책임 소재가 명확히 밝혀지면 구상권을 발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청쪽은 위로금을 포함한 장례비 800만원을 지급한 이후 묵묵부답이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책임을 질 사람이 누구인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허무한 말이 되고 있다. 지루한 책임 공방 속에서 유족들은 슬픔을 추스리지 못한 채 시청과 장례식장을 오가고 있다. 상주시엔 여전히 ‘자전거축제’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한겨레> 사회부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기자가 묵었던 숙소의 주인은 “내 친구들도 공연을 본다고 나갔는데, 사고 뉴스가 나온 뒤로 무사한 지 전화를 거느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내 가족이나 친구 중에 다친 사람은 없지만 다 같은 상주 사람인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걱정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경북 상주시 계산동 상주시민운동장 직3문 출입구 현장. 신발과 음식, 찢어진 옷가지 등이 잔뜩 널려져 사고 당시의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KBS TV 촬영/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상주시청 옆 문화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유흥업소 148곳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근조’ 현수막을 내걸고 6일 하루간 휴업을 결의했다. 시민들 모두 슬퍼했지만 이번 행사를 주최하고 떠들석하게 홍보했던 시청쪽은 대응책보다는 ‘책임론’만 내세워 눈총을 샀다. 사고 직후 희생자들이 안치돼 있는 병원에는 이상배 국회의원을 비롯한 시의회 의원, 보건소장 등이 줄을 이어 방문했다. 그러나 시장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번 사고로 손자 인규(14)와 인목(12)이를 잃은 황의수(70)씨는 “도대체 왜 시장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거냐”고 분노했다. 밤 12시가 돼서야 상주 성모병원에 모습을 드러낸 김근수 시장은 “사고수습 대책반을 꾸리느라 늦었다”며 “최선을 다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황급히 떠났다. 희생자를 위한 빈소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일부 유족들은 병원으로 왔다가 시 외곽쪽의 장례식장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비가 후두둑 떨어졌지만 유족들을 위한 천막도 신속히 마련하지 않았고, 정확한 사고 내용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사고 9시간 뒤 열린 유족 대책회의 소식을 듣고 나타난 담당국장도 “사고 원인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최쪽인 시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는 모든 걸 엠비시와 기획사와 협의해, 안전에 관한 모든 것을 경비업체에 맡겼고, 현재 경찰조사 중이라 정확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규정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고 다음날 합동분향소에서 시장은 “경찰서에서 사고 경위에 대한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어 정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다”고 말해 유족들로부터 “여태 사고 경위하나 파악하지 못하고 무얼했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김 시장은 “자전거축제는 상주시 주최 행사이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할 뜻은 전혀 없다”며 “유족들과 대화를 통해 장례절차와 보상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김근수 시장과 행사 진행을 맡았던 국제문화진흥협회 대표가 매제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이 일었을 때도 시청쪽은 시원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행사를 주관한 박동석 행정지원국장은 “협회 대표가 시장의 매제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특혜를 준 것은 아니”라며 “업체쪽에서 워낙 좋은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실적도 없는 업체에 단순히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만으로 행사를 맡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실무자들이 제대로 검토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관리자가 일일이 계약 내용까지 살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성의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던 김근수 시장은 ‘시청-하청업체-엠비시-경찰’을 두고 벌어지는 책임 공방을 빌미로 사고 사흘째 되는 6일까지 범시민 보상대책위의 구성을 미뤘다. 그 사이에서 애가 타는 건 희생자의 유족들이다. 유족들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시청쪽이 우선 보상을 하고, 나중에 책임 소재가 명확히 밝혀지면 구상권을 발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청쪽은 위로금을 포함한 장례비 800만원을 지급한 이후 묵묵부답이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책임을 질 사람이 누구인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허무한 말이 되고 있다. 지루한 책임 공방 속에서 유족들은 슬픔을 추스리지 못한 채 시청과 장례식장을 오가고 있다. 상주시엔 여전히 ‘자전거축제’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한겨레> 사회부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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