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남겨준 숙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슬픔을 삼키며 1년을 보냈습니다.”
세월호 참사 두 달 뒤인 지난해 6월16일부터 ‘채 피기도 전에 지고 만 꽃들’을 그림으로 되살려온 박재동(63·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화백은 “참으로 기막힌 시간을 보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림쟁이라서 이것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는 박 화백은 “<한겨레>가 마련해준 세월호 추모 기획 ‘잊지 않겠습니다’를 통해 이승에선 아무런 인연을 맺지 못했던 아이들과, 절대로 끊지 못할 인연을 맺었다”고 회고했다.
비통한 마음에 분향소를 찾는 것조차 두려웠다는 박 화백. 그는 “얼굴의 도드라진 특징을 잡아 그리는 캐리커처 작업의 특성상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볼 수밖에 없어 처음에는 매우 고통스런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래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넋을 위로하는 일부터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정 속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묻고 답했던 그동안의 작업은, 예쁘고 너무도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망각의 강’에서 건져 올려 국민의 가슴속으로 되돌려보내는 일이었다”고 했다. 박 화백은 “일부에서 ‘아이들을 인제 그만 놓아주는 게 어떠냐’는 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우리를 붙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한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교사 등 130명의 캐리커처를 그린 박 화백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통해 영정 속 아이들이 훨훨 날아올라 별이 될 수 있는 길을 우리 모두가 열어주자”고 말했다. 서울 휘문고 등에서 미술교사로도 일했던 박 화백은 1988년 <한겨레> 창간에 참여해 시사만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글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사진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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