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밤 중 서울 도심을 휘젓고 다니며 행인을 공격한 멧돼지가 12시간여 만에 붙잡혔다.

28일 밤 11시께 서울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 부근에서 처음 발견된 이 멧돼지는 자정께 강동구 암사역사거리 부근 술집 골목에서 행인 백아무개(29)씨를 들이받아 허벅지에 상처를 내고 달아났다. 30분쯤 후 천호동 천호공원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멧돼지는 귀가 중이던 정아무개(42)씨를 넘어뜨려 찰과상을 입힌 뒤 자취를 감췄다.

이후 새벽 1시50분께 광장동과 암사동 선사유적지 도로 부근에서 멧돼지를 목격했다는 신고가 들어왔지만, 출동한 소방대는 “어두워 시야 확보가 어려운데다 멧돼지가 워낙 재빨라 포획에 실패했다”며 추적을 중단했다. 소방서 관계자는 “비슷한 시간대에 한강 이남과 이북에서 신고가 들어와 멧돼지가 2마리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멧돼지 추적이 재개된 건 29일 오전 11시. 광장동 극동아파트 부근에서 멧돼지를 보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어 천호동 부근에서도 봤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멧돼지가 여기저기서 출몰하고 있다는 제보에 따라 성동·강동·송파소방서와 경찰서까지 총동원돼 멧돼지 ‘체포’에 돌입했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마취총을 쏘며 추격했지만 이에 질세라 멧돼지는 올림픽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뛰어들어 뛰어난 수영실력을 뽐내며 한강을 도하, 남쪽으로 도망쳤다. 결국 야생동물 포획 전문가들이 사냥개까지 동원해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 남단 사이의 수풀 속에 숨어 있던 멧돼지를 찾아내 사살했다. 무게 160㎏·길이 130㎝의 멧돼지 주검은 강동구청에 넘겨져 규정에 따라 압축처리한 뒤 수도권 매립지에 폐기될 예정이다.

또 다른 멧돼지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포획 이후 새로운 신고가 접수된 게 없어 사실상 더 존재하지 않는 걸로 보고 있다”고 소방서 관계자는 밝혔다.

경찰은 멧돼지가 출몰한 주변지역에는 사육을 하는 곳이 없어 아차산 등 야산이나 가까운 하남시에서 멧돼지가 내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속도로변에서 차에서 떨어진 돼지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사육용 멧돼지일 가능성도 내다봤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야생동물 담당자 조문환씨에 따르면 전국에 멧돼지 개체 수는 26만마리 정도. 그러나 그는 “최근 멧돼지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생존 경쟁에 밀린 멧돼지가 산림지역에서 도심 인근 야산으로까지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도심에 멧돼지 출현이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노원구 공릉2동 아파트단지 쓰레기장 앞에서 서성이던 멧돼지가 1시간여 숨바꼭질 끝에 붙잡혔고, 지난해 종로구 청운동과 서대문구 홍은2동에서도 멧돼지가 발견된 바 있다. 포항에 나타난 멧돼지는 자동차판매점 대형 유리창을 깨뜨리고 달아났고, 부산에선 6차로 도로에 뛰어든 멧돼지가 택시에 치여 죽기도 했다.

조씨는 “이번에 잡힌 멧돼지가 야생인지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국립과학환경원에 공문을 보내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야생·사육 멧돼지 모두 겁이 많아 사람을 보면 피하지만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공격하는 습성을 보인다”며 멧돼지를 만나면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한겨레> 사회부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