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0일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문을 닫은 서울 종로구 재동 이운경내과의원.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예스러운 침대·의료기기에
누런색 종이차트까지…
동네 사랑방 역할 해왔지만
84살 원장 “이제 좀 쉬어야죠”
누런색 종이차트까지…
동네 사랑방 역할 해왔지만
84살 원장 “이제 좀 쉬어야죠”
“우리랑 같이 늙었지. 이제 원장님이 그만하신다고 하니 많이 아쉬워.”
1월26일 낮 이기순(86)씨가 서울 종로구 재동 이운경내과 문을 나서며 말했다.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왔다는 그는 원장 이운경(84)씨를 30년 이상 만났다. 이씨는 이 원장에게서 10일치 약을 처방받았다.
28일 병원에서 만난 남항자(71)씨도 이 원장에게 진료받은 시간을 헤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남씨는 이 원장에게 마지막 진료를 받고 방을 나서며 “원장님, 섭섭해서 어쩌죠. 건강하세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종로에서 경기도 의정부로 이사를 가서도 이 병원을 찾아온다는 정성철(79)·최재근(73)씨 부부는 “심혈관 질환 때문에 두달에 한번씩은 오는데, (이 원장은) 참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환자들이 이씨의 처방전을 들고 방문하는 병원 맞은편 미성약국의 약사 김아무개(55)씨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큰길까지 나가지 않으면 동네에 병원은 이거 하나니까 병원이 문 닫으면 우리도 영업이 어렵겠죠.”
30일, 45년 동안 북촌을 지켜온 이운경 원장의 내과 병원이 문을 닫았다. 이운경내과는 회갈색 벽돌로 쌓아올린 아담한 3층 양옥주택의 1층을 빌려 2003년 4월 문을 열었다. 헌법재판소 맞은편에 있던 한국병원 내과과장 시절까지 더하면 이씨는 북촌에서만 45년 동안 환자들을 돌봤다. 정겨운 한옥집이 세련된 빌딩으로 변해간 긴 세월이었다. 고령인 이씨 스스로 환자들을 그만 보기로 결정했다.
한 신문에 실린 이씨의 집안 소개 기사를 보면, 3대에 교수, 박사만 30명이 된다고 한다. 아버지는 역사학계의 거목 이병도(1896~1989)다. 이씨의 남편은 내과 의사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민헌기(87) 서울대 명예교수다. 형부인 화가 장욱진(1917~1990)의 동화 같은 그림 여러 점은 병원 이곳저곳에 은은한 주홍 조명을 받으며 걸려 있었다.
동네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사랑방 구실을 해오던 병원은 마지막까지 환자들로 붐볐다. 26일 하루에만 120명이 다녀갔다. 짐 정리는 틈틈이 이뤄졌다. 이씨와 함께 23년, 13년씩 병원을 꾸려온 간호사 유아무개(55)씨와 최아무개(40)씨는 전산화되기 전 진료기록인 누런색 종이 차트를 정리했다. 오래된 영수증은 폐기했다.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그간의 진료기록을 정리해 봉투에 담아줬다. 단골이었던 고위 관료와 유명 인사 등의 차트는 버리지 않고 보관하겠다고 했다.
유씨는 “그동안 쌓인 환자 차트번호가 3만4000번”이라고 전했다. 예스러운 느낌의 침대나 의료기기, 가구 등은 중고물품 상인에게 팔고, 나머지는 폐기 처분할 예정이다. 병원 자리는 리모델링 뒤 갤러리로 바뀐다고 알려져 있다.
“특별히 기술이 좋았거나 좋은 기계를 사용한 적도 없었어요. (환자들은) 이제 다른 병원으로 가셔서 단골 하시면 다 좋지요.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으니까 이제 좀 쉬어야죠.” 29일 오후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던 이씨는 담담하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38년 주민 진료 할머니 의사 “손때 묻은 반사경이 편해” 서울 서촌 ‘원이비인후과’
1976년 집 근처에 병원 문열어
색 바랜 의사자격증·뻐꾸기시계
“그냥 하던대로 할 뿐이죠” 경복궁 서쪽인 서울 종로구 누하동과 옥인동 일대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갤러리가 늘어나면서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이곳 서촌을 38년 동안 지키는 ‘할머니 의사 선생님’이 있다. 원이비인후과 원종숙(76) 원장의 병원은 네모반듯하게 각이 잡힌 거울과 유행이 지난 뻐꾸기시계, 새하얀 선반장까지 옛날 느낌이 난다. 색 바랜 의사자격증은 벽 높은 쪽에 걸려 있다. 원씨는 1974년 의사 자격을 얻었고 이듬해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됐다. 국내에 의사는 1만명,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350명뿐이던 시절이었다. 이후 1년 반 만에 집 근처인 이곳에 병원 문을 열어 그 이후로 줄곧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안과 진료도 한다. 예전에 서촌은 주민이 적어 ‘병원 할 자리가 아니다’라고들 했지만, 자하문 터널이 뚫린 뒤 터널 너머에 사는 주민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코에 뿌리는 약이 도움이 되니?” “코 나오는 거 닦지 마. 상처가 헐어서 안 돼.” 1월28일 원씨가 병원에 온 10살 꼬마에게 조심할 것들을 교장 선생님이 훈화하듯 일러줬다. 원씨는 “예전만큼 귀가 잘 들리진 않지만 환자들과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손만 대면 밝게 불이 켜지는 최신형 조명기구가 병원에 있는데도 손때 묻고 금이 간 반사경이 더 편해 자주 머리에 쓴다며 겸연쩍어했다. “병원은 한자리에 자리잡으면 오래 합니다. 저 말고도 나이 많은 의사가 많이 있어요. 나이 들어서 그냥 있을 뿐이고 그냥 하던 대로 할 뿐인데 가끔은 이렇게 한자리에서만 계속 하는 게 미련한 일이란 생각도 들어요.” 원씨는 요즘 찾아오는 환자가 예전만큼 많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고 환자가 찾아온다면 계속 문을 열 생각이다. 종로구 의사회에 소속된 70대 이상인 현직 의사는 23명, 80대 이상은 6명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38년 주민 진료 할머니 의사 “손때 묻은 반사경이 편해” 서울 서촌 ‘원이비인후과’
1976년 집 근처에 병원 문열어
색 바랜 의사자격증·뻐꾸기시계
“그냥 하던대로 할 뿐이죠” 경복궁 서쪽인 서울 종로구 누하동과 옥인동 일대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갤러리가 늘어나면서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이곳 서촌을 38년 동안 지키는 ‘할머니 의사 선생님’이 있다. 원이비인후과 원종숙(76) 원장의 병원은 네모반듯하게 각이 잡힌 거울과 유행이 지난 뻐꾸기시계, 새하얀 선반장까지 옛날 느낌이 난다. 색 바랜 의사자격증은 벽 높은 쪽에 걸려 있다. 원씨는 1974년 의사 자격을 얻었고 이듬해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됐다. 국내에 의사는 1만명,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350명뿐이던 시절이었다. 이후 1년 반 만에 집 근처인 이곳에 병원 문을 열어 그 이후로 줄곧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안과 진료도 한다. 예전에 서촌은 주민이 적어 ‘병원 할 자리가 아니다’라고들 했지만, 자하문 터널이 뚫린 뒤 터널 너머에 사는 주민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코에 뿌리는 약이 도움이 되니?” “코 나오는 거 닦지 마. 상처가 헐어서 안 돼.” 1월28일 원씨가 병원에 온 10살 꼬마에게 조심할 것들을 교장 선생님이 훈화하듯 일러줬다. 원씨는 “예전만큼 귀가 잘 들리진 않지만 환자들과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손만 대면 밝게 불이 켜지는 최신형 조명기구가 병원에 있는데도 손때 묻고 금이 간 반사경이 더 편해 자주 머리에 쓴다며 겸연쩍어했다. “병원은 한자리에 자리잡으면 오래 합니다. 저 말고도 나이 많은 의사가 많이 있어요. 나이 들어서 그냥 있을 뿐이고 그냥 하던 대로 할 뿐인데 가끔은 이렇게 한자리에서만 계속 하는 게 미련한 일이란 생각도 들어요.” 원씨는 요즘 찾아오는 환자가 예전만큼 많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고 환자가 찾아온다면 계속 문을 열 생각이다. 종로구 의사회에 소속된 70대 이상인 현직 의사는 23명, 80대 이상은 6명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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