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 콩고 구호전문대원 지현구씨.
[짬] 유니세프 콩고 구호전문대원 지현구씨
낙도·오지 아이들 보며 ‘구호’ 관심
유니세프한국사무소 경쟁 치열 ‘낙심’ 군 시절 모은 월급 들고 프랑스 유학
3년 뒤 콩고 유니세프 자원봉사 지원
현장 경험 덕분 정식직원 채용 통과 그때 그의 주머니에는 군 생활 5년 동안 아껴 모은 돈이 있었다. 주로 섬이나 바다에서 생활했기에 저축이 가능했다, 제대 뒤 국내에서 유니세프 같은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 후배들이 많이 지원해 경쟁이 치열했다. 지난해 말에도 서울 유니세프 사무소에서 인턴사원 둘을 뽑는데, 2000여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무려 ‘1000 대 1’을 웃돌았다. 바늘구멍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그 좁은 바늘구멍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로 했다. “바늘구멍을 멀리서 보면 정말 작은 구멍에 불과해요. 하지만 눈앞 가까이 다가놓고 보면, 그 좁은 구멍을 통해서도 세상이 보여요.” 지난 19일 휴가차 한국에 온 지씨는 취업난에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바늘구멍도 가까이서 보면 길이 생긴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해서야 학원을 다니며 프랑스말을 익혔다. 1년간 어학 연수를 마치고 쥘 베른 대학원에 입학해서 물류관리를 전공했다. 해군 시절 군수 관련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선택한 전공이었다. 2년 만에 대학원을 휴학한 그는 민주콩고 킨샤사의 유니세프 사무소에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내전에 시달리는 콩고는 아이들 구호활동 수요가 많았다. 처음엔 소아마비 퇴치운동을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설득을 했다. 종교나 개인적인 이유로 자녀에 대한 백신 투여를 반대하는 부모들도 많았다. 수백명이 집단학살당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 유니세프 본부에서 정식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현지에서 지원했다. 운 좋게도 서류 심사와 필기시험, 그리고 면접을 단번에 통과했다. 자원봉사자로서의 현지 경험과 전문지식, 그리고 유창한 프랑스어 구사 능력이 좋은 점수를 얻은 덕분이었다. 현재 유니세프 글로벌본부 1만5천여명의 직원 가운데 국가 프로그램 수행을 위한 현지 직원은 2800여명으로, 이 가운데 한국인은 모두 25명으로 1%도 못 된다. 일본은 80여명으로 한국의 3배를 넘는다. 지씨는 콩고의 고마 지역에서 전세계로부터 수집한 구호물품을 종류별로 가려 난민들에게 골고루 배분한다. 한번에 1천여가구가 쓸 물품을 다룬다. 구호품은 취사도구를 비롯해 말라리아 감염을 막기 위한 모기장, 의료약품, 의류 등으로 대부분 덴마크 코펜하겐의 물류창고를 통해 들어온다. 그는 애초 해군 시절 서해안 낙도를 돌며 어린이 구호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지금도 굶어 죽거나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어요. 다양한 국가에서 온 봉사대원과 손발을 맞춰 일하면서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앞으로 지씨는 경험을 쌓아 아프리카보다 더 험한 중동 지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위험하면 할수록 보람은 크기 마련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어린이와 여성들은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창립된 유니세프는 인종, 종교, 국적, 성별과 관계없이 전세계 개발도상국에서 노역, 난민, 부랑아 등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를 위해 다양한 보호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유니세프를 통해 거둔 기부금은 약 900억원. 한국위원회가 직접 돕는 나라는 북한, 수단, 캄보디아, 몽골 등 20여곳에 이른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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