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씨가 2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
“살아있는 동안 일본 정부가 사죄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 말을 입버릇처럼 되뇐 할머니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씨가 2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황씨가 이날 오전 8시께 전남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운명했다고 전했다. 할머니들이 세상을 뜰 때마다 “옆에서 다 가버리고, 보고 싶어서 죽겠어, 친구들이. 다 가버렸으니까…”라며 그리워했던 고인은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고 황금자씨의 1주기인 이날 눈을 감았다.
1926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황씨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남동생과 살던 그는 17살 때 고모집으로 밥을 얻어먹으러 가던 중 부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남자들의 말에 속아 따라갔다. 부산, 일본을 거쳐 남태평양 나우루섬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가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3년간 일본군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신산한 삶은 해방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가난이었고, 뇌경색, 당뇨, 심장병, 대상포진 등 온갖 후유증이 따라다녔다. 말년에 그는 아들이 잠시 곁을 뜨면 “우리집 찾아간다”며 나가는 등 초기 치매 증세도 보였지만, 위안부로 끌려갈 때 탄 일본군의 배와 비행기 이름은 끝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고 한다.
장례는 가족들의 요청으로 화순의 한 병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4명으로 줄었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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