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장그래.
밤샘 알바 병행 공무원 수험생
“올해는 제발 시험 합격했으면”
5년째 회사만 4군데 계약직
“다니던 곳서 계속 일하고 싶어”
연 수입 600만원 연극배우
“좋은 작품 만나 1200만원 돌파 꿈”
“올해는 제발 시험 합격했으면”
5년째 회사만 4군데 계약직
“다니던 곳서 계속 일하고 싶어”
연 수입 600만원 연극배우
“좋은 작품 만나 1200만원 돌파 꿈”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이아무개(30)씨는 새해를 좁은 편의점 계산대에서 맞았다. 이씨는 매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1년째 집 부근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이 끝나면 근처 학원에서 9급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한다. 오후 5시쯤 집으로 돌아가 부족한 잠을 자고 다시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 동안 지인 소개로 작은 회사에서 일했다. 만화 속 ‘장그래’처럼 낙하산으로 입사한 회사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퇴사를 반대하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쳤다. 아르바이트만으로는 생활비와 학원비 대기가 빠듯하지만 9월에 있을 시험만 생각하며 하루를 버틴다.
1일 아침 8시 편의점에서 만난 이씨는 한시간여 동안 의자에 앉지 못하고 계산을 했다. 목 좋은 가게라 할 일이 많다. 새벽에는 물품 정리를 하고, 아침에는 밀려오는 손님 맞이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최저임금(5580원)을 주는 다른 편의점보다 조금 많은 시급 6000원을 받는다. 이씨는 빵과 김밥, 우유 등을 바코드로 찍으며 “연애, 그게 뭔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제발 올해 시험에 붙었으면 좋겠다”며 간절한 새해 소망을 말했다.
기간제근로자인 김정민(가명·34)씨의 새해 소망은 ‘다니던 직장 재취업하기’다. 5년 전 대학원 졸업 뒤 직장을 네번 옮겼다. 수도권 지역 박물관 다섯곳에서 기간제근로자인 ‘학예연구보조직’으로 4~11개월씩 일했다. 12개월을 채우지 못하는 이유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한 ‘꺾기 계약’ 때문이다. 김씨는 다섯번째 박물관에서도 지난해 말 퇴사했다. 이달 중 김씨가 나간 자리를 채울 인력을 뽑는 채용 공고가 뜨면 김씨도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서류전형을 또 하고 면접을 다시 봐야 한다. 다시 나를 채용한단 보장이 없어 늘 불안하다. 모든 기간제근로자의 새해 고민이 나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
3년차 연극배우 염아무개(25)씨는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시작한 연극에 빠져 진짜 배우가 됐다. 연극 <해방구> <열녀춘향> <심야버스>와 뮤지컬 <넌센스> 등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최근엔 이달 말 무대에 올리는 연극 <옥상 위 카우보이>에서 날라리 여고생으로 변신하기 위해 하루 8시간씩 연습 중이다.
염씨의 새해 목표는 ‘좋은 작품에서 연기로 칭찬받기’와 ‘영화 출연’ ‘연 수입 1200만원 돌파’다. 염씨는 지난 한해 600만원을 벌었다. 주업인 연극배우 일만으로 번 돈은 그 절반 정도다. 나머지는 논술 첨삭, 번역, 모션캡처(인체 움직임을 기록하는 디지털 작업) 아르바이트로 벌었다. 재작년 수입은 300만원이었다. 염씨는 “일반 직장인이면 연봉 1800만원이 매우 적은 돈이겠지만, 연극인은 중견이어도 그 정도 벌기가 힘들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3년 전 연극을 시작할 때는 잘해야겠다는 각오, 설렘, 기대가 가득했어요. 지금은 순수함만 갖고는 일하기 어렵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습니다. 새해에는 좀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또 한번 도전하고 싶어요.”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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