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9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인천공항/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뉴욕발 항공기 ‘램프 리턴’을 지시해 물의를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9일 기내서비스 본부장 등 보직에서 물러났다. 모양새는 사퇴지만, 8일 밤 사과문을 낸 뒤 비난 여론이 되레 더 커지자 이날 귀국한 조양호 회장이 공항에서 임원회의를 열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 부사장이 등기이사 부사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걸맞은 책임을 진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8일 밤늦게 낸 보도자료에서 탑승객에게는 지연 운항에 대해 사과했지만, 조 부사장이 담당 임원으로서 권한을 행사한 것이고 승무원과 사무장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었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이날 오전 대한항공이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외부로부터 문의가 있을 경우 “담당 승무원이 서비스를 잘못했고, 사무장이 기본 서비스 절차를 잘못 알고 있었으며, 기내 안전 및 서비스를 책임지는 책임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기장과 협의하여 하기(비행기에서 내림) 결정하였음”이라고 응대하도록 지시한 것의 연장선에서였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9일 곧바로 성명을 내, 회사 쪽의 대응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성명은 “조 부사장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사측은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회사는 조 부사장의 중대한 과실을 덮으려고 승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기장과 객실 승무원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직원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경영진의 과실부터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며 “대한항공은 사주 집안 몇몇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지만 경영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개탄했다. 노조는 회사의 움직임에 반발해, 본격 행동에 나설 태세였다.
국제선을 운영하는 항공사로서 외신의 반응도 부담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가 조 부사장을 고발하기로 함에 따라 사건이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고, 사건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도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여론도 나빠질 대로 나빠진 만큼, 일단 보직에서 물러나 국토교통부의 조사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뜻이라는 분석이 많다.
사건의 마무리까지는 아직 길은 멀다. 무엇보다 ‘오너’ 일가의 제왕적 태도가 문제의 뿌리였다는 비판에 조 회장 일가는 실천으로 답해야 할 처지다.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조 회장 일가가 비행기에 탑승하는 날에는 승무원들이 몇 시간 전에 도착해 있어야 하고, 심지어 유니폼 색깔까지 지시에 맞춘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로부터 막말을 들었다는 직원은 부지기수다. 한 퇴직 조종사는 “군대보다 더하다”고 토로했다. 조 회장 일가의 이런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기업 이미지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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