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사장이 동네 편의점 주인과 말싸움이 붙었다. 이유는 직원들의 ‘흡연 망명’ 때문이다.
지난 8월 말의 어느 날 저녁, 충남 아산시 삼성 탕정 엘시디(LCD) 산업단지 기숙사 건너편 편의점 앞에서 이 회사 직원 몇몇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박동건(55) 삼성 사장이 이를 발견하고 직원들에게 다가가 담배를 ‘압수’한 뒤 사번을 물었다고 한다. 이를 목격한 편의점 주인 이아무개(42)씨가 가게 밖으로 달려나왔다. 박 사장이 누구인지 몰랐던 이씨는 “다 큰 어른이 자기 돈 내고 담배 사서 피우는데 당신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느냐? 남의 사유지에서 무슨 행동이냐?”며 따졌다. 사람들이 이씨를 만류하는 사이 박 사장은 직원들을 끌고 4차선 도로 건너편 ‘삼성 사유지’로 넘어간 뒤 직원들의 사번을 적어갔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박 사장은 금연 클리닉 등을 통한 사내 금연 캠페인을 의욕적으로 벌여왔다. 편의점 주인의 항의는 지난여름부터 시작된 ‘흡연자 현장 채증 단속’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탕정 산업단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이씨의 편의점은 전체가 금연구역인 공장과 가장 가까운 애연가들의 ‘흡연 망명지’였다.
이씨는 불만을 털어놨다. “금연도 좋아요. 근데 남의 가게에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잖아요. 매주 화요일마다 흡연자들 사진 찍어가고 사번까지 적어가요. 편의점에 오면 흡연자로 간주되는데 누가 물건 사러 오겠어요?” 이씨는 담배를 제외한 다른 상품의 매출까지 “반토막이 났다”고 했다. 이씨는 최근 아산경찰서에 삼성디스플레이의 ‘업무방해’에 대한 민원을 넣기도 했다. 다른 편의점들도 불만이 많다. 한 프랜차이즈 편의점 업주는 “담배 피우다 걸리면 불이익을 받는다는데 누가 오겠느냐”고 했다. 다른 편의점 업주는 “요샌 단속이랑 무관한 협력업체 직원들 말고는 손님이 없다”고 했다.
금연 캠페인의 효과가 크기는 하다. 삼성디스플레이 홍보실 관계자는 27일 “전체 임직원 2만6000명 중 12%에 달하던 흡연율이 금연 캠페인 시행 이후 2%까지 떨어졌다. 오로지 임직원 건강을 위한 캠페인이지 흡연자의 불이익은 없다”고 밝혔다. 또 “사진 촬영과 사번 파악 등의 단속행위는 다소 와전된 것 같다. 편의점 업주들의 불만이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산/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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