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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칼날 위에 선 ‘의원 후원금’…‘입법 로비’ 수사 커지는 논란

등록 2014-11-20 19:50수정 2014-11-20 22:33

한전KDN 입법 로비 수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런 식의 수사면 안 걸릴 국회의원이 어디 있겠나.”

한전케이디엔(KDN) 운영비리를 수사중인 경찰이 회사의 입법로비에 연루된 국회의원들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것이란 사실이 알려진 18일, 법조인 출신의 야당 재선의원은 “나치식 질서주의로 회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행위에 ‘법질서 위반’이란 잣대를 자의적으로 들이대 대중의 정치 불신을 키우고, 이를 통해 통치권자의 권한을 극대화하려는 사법기관의 의도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입법로비 수사 자체에 대한 정치권의 불만도 확산되고 있다. 20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는 경찰 수사에 대한 성토가 잇따랐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수사 요건이 안 되는 사안을 언론에 일방 공표해 정치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한 뒤 한전케이디엔 직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수사 대상에 오른 전순옥 의원은 “현장 목소리를 듣고 법안을 만들었을 뿐, 로비를 받은 적도 받을 이유도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애초 전 의원이 2011년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공공기관 발주 사업에 상호출자제한 대상 기업(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 계열사)의 참여를 배제하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전 의원은 이듬해 2월 개정안에 ‘참여제한 기업에서 공공기관은 제외한다’는 조항을 삽입했고, 이 수정안은 그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거대 공기업 한전의 자회사인 케이디엔은 참여 제한 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입법로비를 의심할 근거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닌 셈이다.

이 법안의 발의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케이디엔 직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수사를 받게 된 홍일표·여상규 새누리당 의원 쪽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홍 의원은 “입법로비를 찾아내 처벌하려면, 국회의원 업무 성격이나 후원회 제도 취지 등에 비춰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혐의가 확인도 안 됐는데 불법 후원금이라서 수사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고 말했다.

경찰 “후원금 받은직후 법안 수정”
법안 발의한 전의원은 대가성 부인

법안발의 서명않고 후원금만 받은
여당 의원 2명도 수사받고 ‘불쾌감’

소액후원금이냐 ‘조직적 모금’이냐
‘단체관련 자금’ 모호한 규정도 문제
정치권·학계 “정치자금법 손질해야”

경찰의 케이디엔 입법로비 수사와 관련한 쟁점은 크게 2가지다. 우선은 대가성 여부다. 경찰은 전 의원이 소프트웨어법 개정안 발의 직후 케이디엔 관계자들과 만났고, 케이디엔 직원들로부터 소액 후원을 집중적으로 받은 뒤 케이디엔 쪽에 불리한 법조항을 수정했다는 점을 들어 “대가성이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 의원은 법안 발의 직후 후원금 액수가 늘었지만 그 돈이 케이디엔 직원들로부터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수정안을 낸 것은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둘째는 케이디엔 직원들이 전 의원에게 소액으로 전달한 기부금이 ‘단체 관련 자금’에 해당하느냐 여부다. 경찰은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는 정치자금법 규정(31조 2항)을 들어 전 의원의 후원금 수령을 위법이라고 판단한다. 케이디엔 직원들이 개인 명의로 소액후원을 했지만, 부서별로 후원 대상 의원을 할당한 회사 지침에 따라 후원이 이뤄진 만큼 해당 단체가 조직적으로 모금한 것으로 간주되는 ‘단체 관련 자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의원 쪽은 후원금 기부자가 케이디엔 직원들인지는 알지 못했고, 따라서 경찰 주장대로 회사 지침에 따른 후원이라 할지라도 전 의원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법당국의 입법로비 수사는 2011년 여야 국회의원 6명이 기소된 서울북부지검 ‘청목회 사건’이 첫 사례로 꼽힌다. 청목회 수사는 검찰 수뇌부의 지원 아래 진행된 일종의 ‘기획 수사’였다. 수사 적절성 여부를 두고, 당시 검찰 조직 안에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원로급들은 “입법로비 수사는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청목회 사건에 대해 법원이 유죄로 판결하면서 검찰 내부에선 입법로비 수사에 대한 논쟁이 잦아들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돈줄은 죄고 언로는 열어준 ‘오세훈법’을 만든 것은 국회였다. ‘돈으로 공공성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스스로 법을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법이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검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사법당국의 기류와 달리 정치권은 ‘입법로비’라는 명칭 자체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낸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모든 입법은 결국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입법활동을 이해관계자의 후원 행위와 기계적으로 연결짓는 식의 수사는 입법권의 본질과 의정활동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학계에선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선 현행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문 자체가 지나치게 모호해 수사기관의 자의적 해석과 적용이 잇따른다는 이유에서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법 자체가 문제 있다. 31조 2항의 ‘단체 관련 자금’이란 문구는 손질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나 단체 소유 자금이 아닌, 개별 구성원들 호주머니에서 지출된 후원금까지 ‘단체 관련 자금’이란 모호한 개념으로 포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계와 정치권 일각에선 차라리 미국식 로비스트 제도를 허용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로비스트 합법화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 정치자금법 개정에 참여했던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은 “로비스트 합법화는 자금 동원력이 큰 대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금권정치만 심화시킬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세영 서보미 노현웅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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