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혈액암인 악성림프종을 앓고 있는 김해민(앞줄 오른쪽)양이 10월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난치병 어린이들의 꿈을 이뤄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위시 데이’(wish day) 행사에 참석해 윌리엄 왕자로 변신한 배우 이우성씨와 춤을 추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메이크어위시재단 ‘꿈 실현’ 행사
소아암 친구 12명도 초대
“춤추는 게 제일 좋았어요”
19개월때 소아혈액암 진단 뒤
어린 몸에 20번 항암치료 견뎌
뇌종양 발견 아빠도 수술 앞둬
소아암 친구 12명도 초대
“춤추는 게 제일 좋았어요”
19개월때 소아혈액암 진단 뒤
어린 몸에 20번 항암치료 견뎌
뇌종양 발견 아빠도 수술 앞둬
거울 속 소녀의 볼이 발갛게 상기됐다. 자원봉사에 나선 헤어디자이너 박수진(31)씨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김해민(5)양의 머리카락이 고불고불 물결을 그렸다. 하얀색 드레스와 털 망토를 입으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의 엘사 공주가 됐다. 시녀와 집사 분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공주님’ 곁을 지켰다.
해민이는 소아암을 앓았다. 열이 나고 호흡이 거칠어지길래 감기나 약한 폐렴인 줄 알았다고 한다. 세상에 나오고 19개월째인 2011년 4월 소아혈액암인 악성림프종 3기 확진 판정을 받았다. 몸 안 림프가 부어오르며 장기를 눌러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았다. 만 4살이 되기 한달 전인 지난해 6월까지 작은 몸으로 20번의 항암치료를 버텨냈다. 여느 백혈병 아이들처럼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칫솔질도 어려웠다. 입안이 헐어 피가 날까봐 면봉에 묻은 야채 세척제로 이를 닦았다. 치료를 마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완치는 아니다. 별일 없이 5년이 지나야 한다. 매달 한차례 병원에 다닌다. 면역력이 약해 유치원도 못 가고 집에서 엄마, 동생이랑 지낸다.
“해민이한테 딱 맞네. 정말 멋지다.” 신이 난 해민이를 보고 엄마 윤송미(33)씨와 아빠 김민석(33)씨가 환하게 웃었다. 해민이를 따라 아빠와 엄마는 왕과 왕비로, 동생 해승(3)이는 엘사 공주의 동생 안나로 변신했다.
지난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는 난치병 아이들의 꿈을 이뤄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위시 데이’(wish day) 행사가 열렸다. 이 재단은 1980년 경찰관이 꿈이었던 7살 미국 백혈병 어린이의 꿈을 이뤄준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37개 나라에 재단이 꾸려졌고, 한국에서도 이제까지 2200여명의 난치병 어린이들이 저마다의 소망을 이뤘다.
재단은 ‘공주가 되고 싶다’는 해민이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지난여름부터 대본을 쓰고 파티를 기획했다. 해민이가 일주일에 한번씩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원데이 프로그램’의 소아암 친구 12명도 초대했다. 해민이처럼 머리칼이 빠진 아이들은 두건을 두르고 마스크를 썼지만 다들 드레스를 입고 이웃나라 공주로 변신했다.
어른들은 기쁜 마음으로 연극을 했다. 행사를 후원한 의류수입업체 브룩스브라더스 코리아 신병섭(51) 지사장이 해민이를 주인공으로 재단과 함께 직접 쓴 동화를 읽어줬다. 해민 공주 곁을 검은 그림자(병)가 떠나지 않자 윌리엄 왕자가 “사랑해”라고 외쳐서 공주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이 업체 직원들은 시녀와 집사가 돼 해민이의 시중을 들었다. 배우 이우성(34)씨가 윌리엄 왕자로 변신해 해민이에게 유리구두를 신겨주고 손에 입을 맞추고 함께 춤을 췄다. 세바스찬경 역을 한 자원봉사자 장용휘(32)씨는 “선물을 하나 사주기보다 이렇게 아이의 꿈을 이뤄줄 때 더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날 해민이와 친구들은 풍선으로 만든 호박마차를 탔다. “파티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춤추는 게 제일 좋았어요.” 해민 공주가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해민이의 소원은 아빠 김씨의 소원이기도 하다. 김씨는 뇌종양이 발견돼 이달 초에 수술을 받는다. 김씨 부부는 “해민이가 병원과 집에만 있느라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 더 좋아한 것 같다”고 했다. 파티에 초대받은 소아암 어린이의 아버지 홍아무개(40)씨는 “해민이 가족들이 오늘을 떠올리면서 지난 힘든 시간들을 잊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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