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의 좌충우돌을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tvN 제공
‘투쟁’보단 ‘재잘재잘’…‘푸념’들이 공감 받는다?
‘웃기고 슬픈’ 2030세대의 페이스북 모임에 관심
‘웃기고 슬픈’ 2030세대의 페이스북 모임에 관심
커피포트를 들고 가다 벽에 부딪혀 깨뜨린다. 근무시간을 착각해 너무 일찍 출근했다. 외장하드디스크 파일을 복사하다 몽땅 지워먹었다. 이런 푸념들이 페이스북 담벼락에 즐비하다. 7월에 만들어진 페이스북 모임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는 이런 ‘삽질’들을 서로 고백하고 위로하는 840여명이 모였다.
이 모임은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생 여정훈(30)씨가 만들었다. 1년6개월 일하던 시민단체를 그만두면서 ‘왜 나는 일을 못하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일을 하면서 여씨는 자신이 상하관계, 위계질서 등의 조직적 분위기와는 잘 안 맞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여씨는 19일 “일을 잘하고 못하는 건 개인의 역량 차이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그 구조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불가능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다.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했다.
가입 이유도 다양하다. 일부 회원들은 ‘일 잘하려는 세상에 일 못하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처럼 ‘반항적인’ 이유를 들었다. ‘위로받고 싶어서’, ‘내 이야기 같아서’ 등도 있었다. 회원 대부분은 20~30대다. 말단 사원, 대학원생, 단체 활동가 등이 많다.
같은 자료로 엑셀 프로그램을 돌릴 때마다 다른 수치가 나오거나, 새로 산 노트북 전원을 못 꺼서 퇴근을 못하는 ‘웃기고 슬픈’ 글들이 넘쳐난다. 어떤 이는 처음으로 양면 복사에 성공한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암수 한쌍인 줄 알고 번식을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두 마리 다 수컷이었다는 동물원 관련 기사를 링크해 올리며 ‘위안’을 삼는다.
‘투쟁’보다는 이렇게 ‘재잘거리는 것’이 요즘 20~30대가 노동을 사유하는 방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면 된다’는 성공 신화가 깨진 사회에서 이 세대가 할 수 있는 풍자 놀이라는 설명이다. 권경우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노동권에 대한 고민은 노동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정규직·비정규직 논의를 떠나서 아예 노동권 자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다. 바닥의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패배감의 이면에서 새로운 인식이 싹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캡쳐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캡쳐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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