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형제복지원 대하3부작 제3회-박인근 출소, 그 뒤
형제복지원 대하3부작 제3회-박인근 출소, 그 뒤
부산시는 지난 6월3일, 복지법인 느헤미야(옛 형제복지원)를 상대로 법인 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갔다. 형제복지원 사태가 터진 후 27년, 법인 설립(1965년) 49년 만이다. 그러나 부산시가 쏜 화살은 박인근 일가를 또다시 비켜간다.
법인 설립 허가 취소가 착수되기 하루 전인 6월2일 부산시는 이 문제를 놓고 공청회를 연다. 느헤미야의 새 대표이사 서아무개씨가 갑자기 나타나 “법인을 투명하게 운영하겠으니 거듭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서씨는 느헤미야 외에 이미 다른 복지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 서씨는 <한겨레> 취재진에게 “금액을 밝힐 수 없지만 박인근의 아들 박천광이 구속되기 직전 법인을 샀다. 그의 요구로 거래는 은행계좌가 아닌 현금으로 진행됐다. 판례를 보면 복지법인 매매를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서 대표이사는 박인근이 사위에게 빼돌린 자금 10억8200만원 등 법인 재산을 찾겠다며 소송을 벌이고 있다. 부산시의 허가 취소 절차가 부당하다며 해산 명령 불복 소송도 진행 중이다.
부산시는 상황을 방관했다. 사회복지과 담당 공무원은 “새 대표이사가 복지법인을 샀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 해산 명령을 내렸고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부산시는 이성숙 시의원이 2012년 8월31일 형제복지지원재단의 장기차입을 지적하자 뒤늦게 특별점검을 벌이고 횡령 추정액을 43억4200만원이라 밝히며 부산시를 비판했다. 부산시는 뒤늦게 특별점검을 벌인 뒤 박씨 부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박인근의 아들 박천광은 지난 5월6일 23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법정 구속됐다. 검찰은 아들을 불구속 기소하며 2년을 구형했지만 부산지방법원 제7형사부(부장 노갑식)는 이례적으로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에 뇌경색 등의 의료 기록을 제출한 박인근에 대한 재판은 중단됐다.
현재 느헤미야 자산 237억원 가운데 총 부채 202억원(지난 4월 기준)을 제하면 법인 순 재산은 약 30억원이다. 2001년 주례동 239번지 매각 대금이 223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박인근 일가가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복지법인을 얼마나 방탕하게 운영했는지 알 수 있다.(1996년 이사회에서 박인근이 주례동 부지를 비롯해 법인 총 자산이 시가 379억3717만7000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인근 일가가 개인적으로 갚지 않은 수백억대 부산상호저축은행 부채는 방치될 확률이 높다. 우량 채권은 타 은행이 매입했지만 부실 채권은 버려진다.
박인근 일가가 무리하게 수익사업을 벌이는 가운데 장애인 40여명이 살고 있는 법인 시설 실로암의 집은 피폐해졌다. 2012년 점검 결과 종사자 호봉 산정 부적정으로 인한 과다지급 인건비 2238만4000원, 시설 장애인 생계 급여를 종사자 식비로 사용한 5288만4000원 등 7526만8000원이 적발돼 환수 조치됐다. 자격증 없는 종사자를 물리치료사로 채용하여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실로암의 집은 1999년 착공 이후 한 차례도 개보수 공사를 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 등 55명이 지난 7월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형제복지원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올해 극한 대립에 휩싸이며 국회 장기 파행을 겪은 여야가 형제복지원 법안을 통과시킬지 가늠하기 어렵다. 부산시 형제복지원 담당 관계자는 “형제복지원 법안이 통과돼도 지방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보상을 할 수 없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시의 입장”이라고 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 자양동 건국대학교 법학관 모의법정에서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이 열렸다. 사법연수원 제44기 인권법학회원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모의법정에 있었다. 박인근은 살인, 사체 은닉,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 흉기 등 강요), 미성년자 약취 유인 등으로 기소됐다. 부랑인들의 시설 수용을 지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다. 푸른 죄수복과 흰 운동화를 신은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박인근이 “부랑인들을 먹이고 재워 주었다”고 항변하자 한 남성 피해자는 입에서 터져 나오는 욕설을 차마 뱉지 못하고 법정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여성 피해자는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법정에 세워진 가짜 박인근과 가짜 전두환을 보며 탄식을 쏟아내던 피해자들은 진짜였고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재판 가운데 우는 피해자의 눈물은 실제였다. 이날 모의법정은 연극과 현실이 뒤섞였다. 재판부가 전두환에게 징역 30년, 피고인 박인근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법정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숙연해졌다.
“한때 나는 개였고 소였다. 그렇게 한 나 역시 타인들처럼 가족이 있던 사람이었다. 사람에서 짐승이 되긴 쉽다. 그렇지만 짐승에서 사람으로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 그것은 너무 힘이 든다. 죽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지금 힘들지만 짐승에서 사람으로 돌아가려 한다.”(한국예술종합학교 전규찬 교수, 피해자 한종선 등 공저 <살아남은 아이>)
국가와 부산시의 무능과 묵인, 무관심 가운데 형제복지원은 브레이크 없이 수십년간 질주했다. 몰락한 박인근의 개인사와 별개로 그가 사회에 저지른 범죄, 피해자에게 벌인 악행은 심판을 유예받고 있다. 박인근은 심판과 용서로 그가 가둔 사람을, 그리고 자신을 구원할 시간을 놓친 채 죽음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었다. 시대 변화에 몸을 맡긴 채 포기를 모르던 불굴의 인간 박인근, 그의 끝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형제복지원에 갇혔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을까. <끝>
부산·경남 김해/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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