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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3회 ③ 그해 여름의 폭우

등록 2014-10-10 20:41수정 2014-10-11 15:24

지난달 28일 오후 2시께 사법연수원 제44기 주최로 서울 건국대 법학관 모의법정에서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이 열렸다. 모의법정에서 재판부가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피고 박인근(오른쪽 서 있는 이)을 심리하고 있다. 1980년대 부랑인의 시설 수용을 지시한 전두환 전 대통령(맨 왼쪽)과 박인근이 피고석에 앉거나 서 있다. 사법연수원 제44기 인권법학회 제공
지난달 28일 오후 2시께 사법연수원 제44기 주최로 서울 건국대 법학관 모의법정에서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이 열렸다. 모의법정에서 재판부가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피고 박인근(오른쪽 서 있는 이)을 심리하고 있다. 1980년대 부랑인의 시설 수용을 지시한 전두환 전 대통령(맨 왼쪽)과 박인근이 피고석에 앉거나 서 있다. 사법연수원 제44기 인권법학회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형제복지원 대하3부작 제3회-박인근 출소, 그 뒤
1997년 6월16일, 부산시 오규석 기장군수 집무실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오 군수 등 8명이 민간 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방해했다는 진정을 받고 업무방해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형제복지원(당시 법인명 욥의 마을) 부지 이전 문제를 놓고 박인근과 대립하던 오 군수는 졸지에 피의자가 됐다. 군수쯤은 박인근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1980년대 부산시장을 등에 업고 구속된 뒤에도 치료를 핑계로 거리를 활보한 게 그였다. 혐의 입증에 자신을 보이며 집무실을 압수수색하던 경찰은 6월25일 무혐의로 싱겁게 수사를 종결했다.

“사건 자체만으로 볼 때 경찰이 자치단체장 집무실과 가택을 압수수색하고 출장 수사를 하는 등 극히 이례적인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시선과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경찰이 진정서가 접수된 지 불과 20여일 만에 압수수색과 출장 조사에 나선 것은 관례와 상식을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특히 집무실과 가택을 압수수색하면서도 직속 상부기관에 사후 보고를 한 점은 경찰 조직의 위계 질서를 의심케 한다.”(97년 6월21일 <부산일보>)

형제복지원이 자리한 부산시 주례동 부지를 매각한 뒤 기장군 정관면의 개발제한구역으로 시설을 이전하려 한 박인근의 계획은 번번이 좌절됐다. 오 군수 때문이었다. 오 군수는 1997년 6월13일부터 7차례 전용산림용도 변경 승인 신청을 반려하며 무계획적 개발을 제한하고 주민 공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시설 이전을 반대한 기장군 지역 주민과 오 군수를 향해 당시 다수 언론은 ‘님비 현상’(혐오 시설을 반대하는 지역 이기주의)이라는 색깔을 입혔다. 오 군수는 시설 이전을 허락하라는 정치인들의 압력을 받았다.

시설 부지 이전 문제로 기장군 지역 주민들은 반목하고 갈라졌다. 박인근과 매매 계약을 한 부지 소유주 강아무개씨가 목재소를 짓겠다며 포클레인으로 작업을 하자 주민들은 공사장 부근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였다. 매일 19개 마을 주민 10~20명이 동원돼 24시간 공사를 감시했다. 9월25일 새벽 5시, 공사를 벌이려는 강씨와 이를 막는 주민 70여명 간에 고성이 오가다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주민들은 부지 소유주 강씨가 목재소를 핑계로 공사를 하는 것은 복지법인 욥의 마을 시설 이전을 위한 꼼수라고 비난했다.

박인근은 한 번 붙잡은 목표는 놓지 않고 밀어붙였다. 민원을 이유로 허가를 불허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해 승소했다. 오 군수의 임기가 끝나기 두 달 전인 1998년 4월14일 부산시가 전용삼림용도 변경을 직권 승인했고 계획대로 기장군 정관면 달산리 산133번지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시설 ‘실로암의 집’ 건설 공사를 시작한다. “기장군 정관면 달산리 일대 부지는 바다가 보이는 산등성이 부분으로 주변 환경이 인가와 더욱 떨어진 지역입니다. 도로와 대지의 경계 부분으로 붙어 있고 지역이 산등성이에 위치하여 민원의 소지도 없습니다.” 박인근은 자신감이 넘쳤다. 민가와 가까웠던 주례동 형제복지원 시절을 회고하면,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시설 운영이 수월했다.

공사는 2002년 5월 끝이 났다. 과거 3000여명에 달했던 형제복지원(당시 법인명 형제복지지원재단) 시설 거주자들은 건물 노후화와 함께 다른 시설로 이전됐고 중증장애인들 46명만 남아 있었다. 기장군청으로부터 준공 검사도 받기 전인 2002년 5월26일, 장애인 46명이 과거 형제복지원 자리에서 새 시설로 옮겨졌다. 부지 8799평, 연면적 1200평으로 착공된 시설 ‘실로암의 집’은 산허리를 깎아 경사가 40도에 달했다. 일반인들도 걸어 올라가면 숨이 가빠졌다.

부산저축은행 김양 부회장과
인연을 만든 박인근에게 대출은
가게서 담배 사는 것처럼 쉬웠다
빗장 풀린 욕망은 한계선을 넘어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부산시는 올해가 되어서야
법인설립 허가취소 절차 돌입
부산시는 뒤늦게 박씨 부자 고발
아들 천광씨는 지금 감옥에 있고
박인근 재판은 병을 이유로 중단

그해 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2002년 8월4일부터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낙동강 하류 지역의 물은 넘실대며 넘쳐날 것 같았다. 실로암의 집 주변 지반은 비가 7일째 내리던 8월10일 오전 7시40분께 무너져 내렸다. 토사 30여t이 실로암의 집 1층 방과 식당을 덮쳤다. 도망치지 못한 장애인 임병호(13), 박창호(17), 김기한(16), 조수만(18)군이 젖은 흙더미에 파묻혀 숨졌다. 당시 5600㎡의 건물 터를 확보하기 위해 산허리를 무리하게 깎는 바람에 실로암의 집 뒤편 절개지 경사각은 40도에 이르렀다. 형제복지지원재단은 산허리를 깎은 뒤 절개지에 콘크리트 안전벽을 1.5m 높이밖에 올리지 않고 낙석 방지용 철망도 2m만 설치했다.

토사가 무너져 내려 사람 네 명이 숨진 그날, 실로암의 집은 처참했다. 흙더미에 싸인 시설은 바닥에 가재도구가 나뒹굴고 사고 현장에는 공무원과 소방대원, 취재진과 시설 직원들이 뒤엉켰다. 박인근은 비에 젖은 흙더미 속에서 취재진을 향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였나? 내가 죽였나? 내 책임이가!” 시설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냉혹한 눈길만큼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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