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형제복지원 박인근, ‘악행의 말로’를 추적하다

등록 2014-10-10 20:32수정 2014-10-11 15:29

[토요판] 커버스토리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3회 ① 악행의 말로
형제복지원 대하3부작 제3회-박인근 출소, 그 뒤
▶ 형제복지원 3부는 원장 박인근의 60살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1987년부터 국가기록원, 부산시, 기장군청에 남겨진 법인 관련 자료, 박인근의 재산을 추적하기 위한 오스트레일리아와 국내 등기부등본, 시민단체 부산사회복지연대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자료,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인간 박인근의 말로를 입체화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회입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 참회하고 국가가 지나간 과오를 사과하는 날을 기대합니다.

인간의 말로에는 생의 지나간 시간들이 퇴적돼 있다. 1980년대 대통령 표창을 받고 전국 최대의 부랑아 시설을 이끌며 복지계 영웅으로 전성기를 보낸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1987년 추락한다. 특수감금 혐의 등으로 구속돼 2년6개월을 보낸 박인근은 1989년 7월 교도소를 나와 달라진 세상을 목격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며 경제가 호황에 접어들었고 1990년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산업의 축은 경공업을 지나 중공업, 전자, 서비스 산업으로 선진화되고 있었다. 감금된 원생의 노동력을 착취해 봉제공장 등을 가동하던 박인근은 바뀐 세상에서 새로운 복지왕국을 꿈꾼다. 복지시설을 줄여 수익사업을 다각화하고 원장에서 사업가로 변신한다. 한 차례 추락했을 뿐, 형제복지원 대표이사로 쉽게 재기한 박인근은 자신의 성공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친구가 부회장으로 있는 부산상호저축은행의 화수분 같은 대출 창고는 쉽게 돈을 내주었다. 돈과 인맥, 거짓말과 술수로 사람을 움직이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박인근은 머리 위로 폭우를 머금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돌아오지 못할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글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


화려한 부활, 브레이크 없는 질주의 끝
출소 이후 박인근의 행적을 추적하다

등장인물

원생 감금·착취 대신 새로운 술수로 사람들을 죽이다

민가를 벗어나 좁은 길을 따라 산턱으로 2㎞쯤 걸어 갔을까. 단감 밭과 야산이 둘러싼 어둠 속 폐교는 철조문으로 막혀 있었다. 철조문 너머 1642평 대지에 들어선 학교의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교실과 기숙사, 식당으로 쓰이던 5층짜리 건물 세 동에 학생들이 오지 않은 지 오래다. 언제 닦았을지 모를 교실의 창문들마다 불은 꺼져 있었다. 운동장 왼쪽에 자리한 건물의 창문 한곳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학교 정문을 두드렸지만 소리가 운동장을 넘어 빛이 새나오는 건물까지 전달될 리 없었다. 2014년 9월25일, 시계는 오후 7시10분을 가리켰다.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옛 형제복지원)의 수익사업인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 사상해수온천. 5층짜리 건물과 붙어 있는 교회도 재단 소유다. 이 교회 목사는 지난 2~5월 느헤미야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유리 기자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옛 형제복지원)의 수익사업인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 사상해수온천. 5층짜리 건물과 붙어 있는 교회도 재단 소유다. 이 교회 목사는 지난 2~5월 느헤미야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유리 기자
경남 김해시 생림면 장재로 무척산 인근의 아동보호치료시설 신영중고등학교. 가정법원, 지방법원의 소년부가 불량 행위를 한 학생들을 위탁 교육하는 곳이다. 아이들이 많을 때는 80여명이 여기서 살았다. 2년 전 그 일이 있기 전까지. 2012년 7월25일 학생 66명이 전남 신안군 해섬으로 무인도 체험학습을 나섰다. 학생 2명이 바다에서 놀다 파도를 따라 떠내려갔다. 같이 놀던 아이들이 “구해 달라”고 외쳤지만 체험학습 여행사 직원은 “수영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구명조끼를 입은 여행사 직원이 바다에 들어갔다 금방 나왔다. 검푸른 파도를 따라 아이 2명이 멀어지다 작은 점이 되고 어느덧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남겨진 친구들은 모래 위에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치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학교 교사들은 전남 무안군 운남면 신월 선착장에서 여행사 직원들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난 뒤였다. 학생들이 여행을 떠난 지 사흘 뒤인 28일 해섬 남서쪽 1.4㎞, 북동쪽 1.6㎞ 해상에서 주검이 된 아이 2명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점차 학교를 떠났고 학교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빛은 사고 당시 이 학교를 소유한 복지법인 신양원의 대표이사 박아무개(49), 학교장이자 박씨의 남편인 김아무개(54)의 거처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이들은 폐교에 살고 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2008년 8월29일부터 신양원의 대표이사를 지냈고 2010년 12월14일 첫째딸인 박씨에게 넘겨주었다. 박인근은 배아무개씨로부터 이 법인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인근과 아들이 검찰 수사를 받던 지난 1월27일, 이 학교 법인의 대표이사는 허아무개(54)씨로 바뀌었다. 박인근의 지인인 허씨는 두 차례 김해시장에 출마했다 낙마한 인물로 형제복지원(형제복지원은 이미지 세탁을 위해 재육원, 욥의 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 느헤미야로 줄곧 법인명을 바꾼다)의 각종 행사에 참석해왔다.

김해시 생림면 신영중고교
학생 2명이 물에 빠져 죽은
비극적 사건 뒤부터 폐교가 된
이곳서 산다는 박인근 딸 부부
“박인근도 부근서 요양” 소문

군수와 주민 반대 뚫고 추진한
중증장애인 시설 ‘실로암의 집’ 공사
산허리 깎아 만들어 경사 40도
2002년 폭우 4명 파묻혀 죽자
박인근 “내가 죽였냐?” 악을 써

학교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을에 닿는다. 김해 시내와 한참 떨어진 이 지역은 금방 해가 저물어 마을이 어두컴컴했다. 신영중고등학교에서 10년 넘게 경비로 일하다 퇴직한 노인의 집 창문을 두드렸다. 집 밖으로 나온 노인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학교를 가리켰다.

“저 불빛 보이지? 교장 부부만 사는데, 저래 보여도 한때는 건물 세 동 있는 멀쩡한 학교였어. 내가 학교 경비를 했는데 참, 경비가 쉬워 보이지? 아냐. 아이들이 도망갈까봐 밤마다 문이란 문, 틈이란 틈은 다 확인해. 아이들은 늘 도망칠 궁리를 했거든. 학교는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으려 했어. 애들이 나가면 정부 보조금이 줄잖아. 박인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사일에 한번은 이 학교에 왔어. 와서는 직원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면서 1987년 구속이 됐지만 자기가 힘이 세서, 무죄여서 감옥에서 나왔다고 했어. 박인근 아들은 비엠더블유인가, 벤츠인가 외제차 타고 다녔고. 몇 년 전이었던가, 김해의 공무원이 감사를 나왔지. 그 여자 공무원이 1987년 사건을 입에 올리자 박인근, 딸, 사위 셋이서 난리, 난리를 쳤어. ‘당장 사과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 쉽게 말해서 좀 별난 가족이었어. 요즘 박인근은 보지 못했고, 딸 부부는 시커멓게 선팅이 된 봉고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데 동네에 걸어다니는 걸 본 적은 없어. 그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과 교류도 안 하고, 차로 왔다 갔다만 해. 왜 그런지 알아?”

집 앞 흰 가로등 아래 선 노인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옅게 웃었다.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크고 비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리니까. 뒤가 막, 구리니까.”

형제복지지원재단이 소유한 수익사업 가운데 하나인 부산 사상구 괘법동 사상해수온천과 맞붙은 건물 5층에 살았던 박인근은 최근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서 요양 중이라고 그의 측근이 말했다. 건강이 악화돼 딸의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박인근 일가는 그러나 폐교 밖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인근과 아들은 법인 자산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3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들 박천광(38)만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검찰을 통해 뇌경색 진단서 등 의료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한 여든다섯살의 박인근은 법정에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다. 박인근은 아들과 사건이 분리됐고 재판이 중지돼 있다. 1975~1986년 원생 513명 숨진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영원히 심판받지 않을 자로 삶의 끝을 맺을지 모른다.

② 투기적 인간, 박인근
③ 그해 여름의 폭우
④ 욕망의 끝
⑤ 심판과 구원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전편 다시보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영상]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30만명 ‘김건희 특검’ 외쳤다 1.

[영상]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30만명 ‘김건희 특검’ 외쳤다

“윤-명태균 녹취에 확신”…전국서 모인 ‘김건희 특검’ 촛불 [현장] 2.

“윤-명태균 녹취에 확신”…전국서 모인 ‘김건희 특검’ 촛불 [현장]

거리 나온 이재명 “비상식·주술이 국정 흔들어…권력 심판하자” [현장] 3.

거리 나온 이재명 “비상식·주술이 국정 흔들어…권력 심판하자” [현장]

‘빈집’ 공수처…윤, 신규 검사 임명 ‘뭉개기’로 수사 마비 4.

‘빈집’ 공수처…윤, 신규 검사 임명 ‘뭉개기’로 수사 마비

머스크가 칭찬한 ‘사격’ 김예지, 국내 첫 테슬라 앰배서더에 발탁 5.

머스크가 칭찬한 ‘사격’ 김예지, 국내 첫 테슬라 앰배서더에 발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